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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케이시 포썸이 나를 파괴해버렸다

시크릿 베이스 명예의 전당: 케이시 포썸

존 보이스 작성 | 2021년 2월 8일, 오후 1:30 EST | 번역: 42O

 

 

 

“아리랑볼(Eephus)”은 멍청하게 보이는 구종을 위한 멍청해 보이는 이름이다.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역사를 통틀어서도 오직 적은 수의 선수들만이 주기적으로 이를 던졌고, 케이시 포썸(Casey Fossum)은 그 중 하나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들 중 다수는 속도를 바꾸는 것에서 성공을 이뤄냈다. 만약 1분 동안에 시속 152km로 던졌다가 그 다음에는 시속 123km로 던질 수 있다면, 타자가 고정한 다음 정확히 시간을 맞추는 걸 더욱 힘겹게 할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둘 중 아무 것이나 손아귀에서부터 날아가듯 보이도록 할 수 있을 때에만 정말로 먹힌다. 타자에게 이것을 몰래 알려줄 수는 없다. 똑같이 보이도록 전달력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만약 지금 당장 그래보고 싶다면, 이것이 얼마나 고난이도의 기예인지에 대해 과도하게 간소화된 시연을 스스로에게 시도해볼 수도 있다. 종이 공이나 뭐 그런 거를 만들어보라. 할 수 있는 한 세게 던지면서, 팔과 몸이 던질 때에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집중해보자. 이제 그와 동일한 제구 동작을 따라하지만, 이번에는 반절 정도로만 세게 던지면 된다. 그렇다면 이제 야구공을 가지고 18.4m 떨어진 곳에서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감을 잡을 것이다. 

하지만 아리랑볼은? 그거는 포수 글러브에 시속 88km, 80km, 심지어 72km로 날아들 뿐이다. 포썸이 어떻게 보였는지는 여기에 나온다. 


어떤 짤들에서는 소리가 나는데, 이것에서는 슬라이드 휘슬 소리가 난다. 겉보기로는 마치 카툰과도 같으며, 영리하게 던져본 한다면 먹힐 수도 있다 - 어느 신문기사에서, 팀원들은 포썸이 경기당 아리랑볼을 세 번 정도만 던진다 말했다고 한다. 너무 자주 던진다면, 상대편이 따라잡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기이하고, 슬픈 기습처럼 놔두어야 한다, 마치 빨래 더미에 떨어진 담배꽁초처럼. 

야구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25명이나 그 정도 되는 아리랑볼 투수들이 왜 저 구종을 집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들의 공통분모가 위대함인 것은 아니다. 케이시 포썸은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기준상으로는 위대한 투수가 아니었으며, 사실상, 최소한 100번의 선발을 나섰던 투수들 중에서, 포썸은 역대 최악의 ERA 중에서 하나로 경력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내가 그의 능력을 훼손하는 것을 듣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두 가지 것들 때문이다: 첫째로, 그는, 당연히 애초에 붙어있는 채 100회 이상의 선발에 오를 정도로 충분히 괜찮았다.  

그리고 둘째로는, 비디오 게임 버전의 케이시 포썸이 나에게 대단하고 끔찍한 모욕을 선사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를 영원히 야구 게임에서부터 학을 떼게 했던 바로 그것을. 오늘날까지도,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

 

2006년, 나는 23살이며, 우리는 나의 아파트에 있다. 이 이야기는 케이시 포썸에 대한 것이지 나에 대한 것이 아니므로, 조금만 커튼을 쳐보도록 하겠다. 

TV의 왼쪽을 보신다면, 웨이트 벤치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운전해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모퉁이에 놔두고 갔던 아무 잡동사니들을 주워오는 걸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에는, 그 때는 사람들이 그냥 그랬던 시절이었으니까, 이 친구가 말하지도 않고 찾아왔는데, 트럭 뒤쪽에 웨이트 벤치를 들고 온 것이다. “이거 갖고 싶냐? 나 이거 이미 있는데.” 당근이지. 

우리는 내 방으로 그걸 열심히 끌어왔고, 내가 한 번 써보려고 한 뒤에, 일어나서,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이게 어린이용 웨이트 벤치라는 걸 깨달았을 때까지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이 가능성이 내게 발생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나는 그런 게 존재라도 한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거려나? 다른 친구가 잠시 들렸다. “아니, 어, 야, 이거 애들 꺼잖아. 딱 봐도 그런데.” 나는, 그걸 팔기에는, 너무 게을렀고, 당연히 쓰레기 수거업자가 가져가라고 돈을 내려는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는 그러한 종류를 하기 위한 돈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아무 종류에서나. 그래서 이건 거기에 한 해 동안 박혀있었다. 그건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았다. 알려면 가져와야지, 친구. 

다시 제대로 된 곳에 관심을 돌려볼 수가 있다면, 나는 엑스박스로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2K6을 돌리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거 하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실사 야구 비디오 게임이 나쁜 생각이라고 느꼈고, 지금도 그렇게 느낀다. 그것들은 [R.B.I 베이스볼] 시리즈처럼 간소화되거나, 아니면 [마리오 슈퍼스타 베이스볼]처럼 정신머리가 완전히 나가버려야만 한다. 공에 방망이를 잘 가져다대는 것의 기예는 단순히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모의될 수가 없지만, 이 게임이 잡고 있어야 하는 게 그런 것이며, 그렇기에 타격은 사실 다른 것보다도 판돈을 버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잘 하지도 못하고 재밌지도 않는 이 게임의 로비에 있는 채, 온라인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는 나를 빡치게만 할 것인데, 나의 2006년 기준에서마저도, 내 인터넷 연결은 끔찍하기 때문이다. 야후!를 잃었다. 체스 시합마저도 렉이 걸려버릴 정도로, 그렇게나 나빴다. 경기가 성사되었고, 로딩 화면이 등장하는 순간, 나는 웬 애의 목소리가 마이크 너머로 웃어제끼며 들어오는 걸 들었다. 그 아이는 아마 12살보다도 나이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린이들과의 온라인 게이밍은 우리 모두가 그냥 익숙해져야만 할 수밖에 없는, 꽤나 기이한 경험이다. 더 사회적인 우위에 있는 위치가 강탈당해버리니 말이다. 더 이상 그들보다 훨씬 더 위엄 있게 되지가 않는다. 이것은 막내 동생과의 친근한 [마리오 카트] 한 판이 아니며, 전부 재미를 위해서인 친근한 시합에서처럼 웃어넘길 수가 없다. 사람들이 온라인 게임을 하는 건 그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재미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기기 위해서 게임을 한다. 누가 커스텀 avi를 업로드하는 데에 시간을 들이는가? 누가 자신들의 레이팅을 조심스럽게 모니터링하는가? 누가 정렬된 시합을 찾기 위해서 5분 동안 로비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가? 너가 그랬지, 이 멍청이아, 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너는 이것에 동등이 진지하게 임하고 있으며 심지어 다른 식으로 젠체하는 척조차 못한다. 

그 애가 템파베이 데빌레이스, 야구 최악의 팀들 중 하나를 고르는 걸 봤을 때, 나는 어쩌면 최초의 승리를 가져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팀을 고르게 되는 유일무이한 건수는 144km 이상의 패스트볼과 탁월한 슬라이더를 던지는 젊은 에이스 스콧 카즈미어(Scott Kazmir)에 있었다. 나는 그 애가 심지어 선발로 카즈미어를 고르지 않았을 때 더욱 더 들떴다. 

그는 케이시 포썸을 선발에 올렸다. 

이 시점에서, 나는 포썸이 아리랑볼 구종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애초에 아리랑볼 자체가 무엇이었는지 감조차 잡지 못했다. 실제 삶에서의 포썸과는 달리, 이 애는 이것을 어찌나 자주 던지던지 패스트볼이 실제로는 오프 스피드 피치였다. 이것은 무언가 아리랑볼, 패스트볼, 아리랑볼, 아리랑볼, 패스트볼, 아리랑볼 하는 식으로 갔다. 그가 첫 회에 삼진으로만 3아웃을 했을 때, 내가 정말로 할 수 있는 건 웃는 거밖에 없었다. 나는 그러한 투구를 본 적이 전혀 없었으니까. 공은 [덕 헌트]에 나오는 그 클레이 비둘기처럼 움직였다. 하지만 괜찮았다, 방법을 궁리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는 두 번째 회에도 삼진으로만 모두를 아웃시켰다. 나는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었다. 아리랑볼이 어찌나 이상한 구종이었던지 아리랑볼이 올 거라고 정확히 예상을 했을 때에도, 어떻게 해서 놓치고 말았다. 심지어 공에 닿지도 못했다. 최악으로는, 카운트를 갖고 어떻게 해볼 수도 없었는데, 그 애가 던졌던 대부분의 제구가 플레이트 위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5번 타자가 나왔을 때 즈음에, 나는 마이크 너머로 그 애를 들을 수가 있었다: 

 

뭐, 이 새끼야 

뭐 뭐, 이 새끼야 

뭐, 이 새끼야

뭐 뭐, 이 새끼야 

 

이것은 경기의 나머지를 통틀어서 계속될 것이었다. 그는 멈추지를 않았다. 

3회로 들어가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전략을 되새기고 있었다: 들어봐, 만약에 쟤가 계속 아리랑볼을 던질 거면, 그냥 쟤가 매번마다 하나씩 던질 거라고 보는 거야. 만약 패스트볼을 늦게 치는 거라면, 그냥 늦은 거지. 그냥 아리랑볼을 쳐봐. 저걸 타이밍 맞게만 친다면, 152m까지도 날려버릴 수가 있으니까. 

그러더니 그 애는 패스트볼 3연속으로 나를 삼진아웃 시켰으며, 나는 희극적일 정도로 세 번 모두를 늦게 휘둘렀다. 나는 즉시 이 전략을 버려버렸다. 

 

뭐, 이 새끼야

이 똥멍청이 새끼 

뭐, 이 새끼야 

뭐 뭐, 이 새끼야 

 

나에게는 마이크가 없었고, 세상에나 정말로 다행이었다. 

(이미 렉으로도 손상되어버린) 상대편의 타이밍 감각을 완벽하게 파괴하는 것을 넘어서, 온라인 게임 상에서 여러분에게 던져진 아리랑볼이 갖고 있는 또 다른 특별한 실용성이 있다. 완전히 멍청이처럼 보이게 하는 것. 공이 플레이트에 반절조차 오지 않았을 때에 이미 휘두르고 앉아있는 것이다 만약 반대쪽으로 질러보았지만 잘못 예측했을 때에도, 공이 기본적으로는 이미 미트에 들어갔을 때까지도 휘두르지를 않고 있다. 비디오 게임 포썸은 구종의 위치로 여러분을 속일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모든 공이 플레이트 위로 날아가니까. 그는 시간을 맞추고, 감각하며, 반응하는 여러분의 능력을 공격한다. 그는 여러분의 지능을 직접적으로 공격한다.

온라인 게이머를 빡돌게 하는 데에는 분명하고 반복적으로 능가해버린 다음에 여러분을 바보처럼 보이게 하는 거만한 것도 없다. 누군가는 여러분이 특정한 맞춤형 기술에 무르다는 걸 알아낸 후에 죽을 때까지 그걸로 괴롭혀댈 것이다. 여러분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어떻게 일어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깨닫게 되는 구간이 있다. 이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아버리는 구간이다. 여러분의 상대편은 몇 백 번의 감도 못 잡는 목표물들에 맞서 이 몇 백 번씩은 이 플레이북으로 달려보고 있다. 이 회전목마의 다음 순서가 여러분이며, 여러분은 여기에 지러 왔다. 

 

야 이 새끼야

뭐 하냐 이 새끼야 

뭐 이 새끼야 

뭐 뭐 이 새끼야 

 

4회에 다다랐다. 타석에 12명, 12명 아웃, 전부 다 삼진. 이것은 내 자아에 완벽하게 조준된 일격이었다. 

나는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비디오 게임에 있어서는 특출난 전략가라고 생각한다, 내 능력은 [매든 ‘93], [퍼펙트 다크], 그리고 [레인보우 식스]의 불길에서부터 만들어졌으며, 한편 기이하고 오래된 DOS 전략 게임이라는 흑마법을 통해서도 견식을 넓혔다. [워로드]와 [노부나가의 야망]의 위대한 정복을 지휘하기 위한 캠페인들은 부대와 경제에 대한 숙달을 요구했다. 이 꼬마가 알기에는 너무 어린 게임들. 

나는 또한 내가 야구에 대해서도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시청하니까. 심지어 2006년에도, 나는 매일매일 베이스볼-레퍼런스를 들여다보고 있다. 나는 언젠가는 글쓰기로 먹고 살고 싶은데, 그게 어떻게 해서 발생한다면, 내게는 야구가 이를 위한 입장권처럼 느껴진다. 나는 수습기간의 전문 야구 작가다. 나는 아리랑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나는 내가 꽤나 태평스러운 양반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쉽게 화나지를 않으니까. 나는 굉장히 만사태평한 편이다. 나는 사람들과도 잘 어울린다. 내가 일하고 있는 기술 지원 콜센터에서는, 관리자들이 내가 역-상승시키는 것을 굉장히 잘 한다고 적어놓는데, 이는 곧 화가 난 사람들이 내게 전화를 건다면, 내가 그들이 조금 더 이해받는 기분이 들고 덜 화가 나게 도와주는 걸 잘한다는 의미다. 

이 모든 것들이 내게 많은 걸 의미한다. 이것들은 내 자아의 근간이니까. 야, 저 놈 좀 봐봐. 알잖아, 저 친구는 정신머리도 제대로 못 차렸고, 사실은 일종의 멍충이긴 하지만, 야, 이 친구는 뭘 좀 알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 똑똑한 놈이야. 그건 뭣 좀 되는 거지. 

그 모든 기둥들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야구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내 삶을 구하기 위한 시속 88km의 제구마저 칠 수 없던 속수무책의 쓰레기였고, 그보다도, 나는 비디오 게임 케이시 포썸과 기회가 날 때마다 나를 머리로 능가해버리는 웬 놈의 열두 살배기에게 완벽하게 열이 뻗쳐버린 상태니까. 

그 애는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에서 나보다 더 뛰어났다. 나의 자존심이 절멸당하고 있었다. 

 

이 놈 새끼 

뭐 뭐, 이 새끼야

이 놈 새끼

뭐 뭐 이 새끼야 

 

바로 지금까지도 나를 완벽한 실패자로 만들어버리는 것들 중에 하나는 내가 온라인 게임 상에서의 에티켓을 굉장히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얼마나 끔찍하게 파괴되고 있든 간에, 절대로 경기를 떠난 적이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엄청나게 통렬한 말들을 던져도 나는 “고마워요!”라고 할 것이며 화나지 않은 척을, 이게 나한테 상관없다는 할 것이다. 친절함으로 죽여 버리기, 라고 아시지 않는가? 나는 그보다 위에 있다. 나는 이보다 더 나은 사람이다. 

여러분이 23살이고 그 무엇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느 쪽으로든 나아가고 있을지라도, 그런 쪽으로 느끼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하지만 나는 노력을 해본다, 정말로 그렇다. 나는 경기를 떠나기를 거절한다. 나는 이 퍼즐을 해결하기 위한 의지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오래가는 만큼만 남아날 수 있다. 내가 이 게임을 이기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저 애에게 조금이라도 뭔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양쪽 모두에게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 내가 알아내고야 말았다는 걸. 

 

뭐, 이 새끼야 

뭐 뭐, 이 새끼야 

이 놈 새끼 

뭐 뭐, 이 새끼야 

 

가위 바위 보를 50판 연속으로 지는 경험을 상상해보자, 그리고 여러분에게 이것이 어떤 느낌일지도 함께. 나는 한 움큼의 공들을 파울 처리하긴 했지만, 단 하나의 공도 날려버리지를 못했다. 이 아이는 천재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정말로 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것을 얼마나 근본적으로 못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최소한 비디오 게임에서라도 잘 할 수는 없던 것일까? 우리는 이미 내가 아무것도 모르며 상관없는 일들에 화내는 멍청한 아기라는 것도 이제 결론을 내렸다. 최소한, 이거라도 가질 수는 없을까? 응, 안 돼. 

나는 이 아이가 나를 자기 또래 즈음으로 생각하기를 바란다. 나는 이 아이에게 10년 하고도 5년 뒤에 그에 대해 쓰게 될 정도로 다 큰 어른을 철저하게 난처히 만들어버리는 일이 절대로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나는 케이시 포썸이 어느 날에, 두 대의 텔레비전 상에서, 그가 신이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내가 갖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저 모든 요구들을 포기해버린 후에, 마지막으로 놓아줄 것은 명예에 대한 감각이었다. 7회 어딘가 즈음에서, 나는 연결을 끊었다. 나에게는 메뉴를 훑어 다닐 시간이 없었다. 산소가 바닥난 상태였다. 나는 벽에서부터 콘솔 플러그를 뽑았다. 토네이도였을 것이다, 저 아이가 알았던 선에서는. 나는 다시는 온라인 야구 게임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