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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함에 시달리다

존 보이스 | 2013년 8월 21일 | 번역: 42O

멍청함에 시달리다

드래프트된 바로 그 순간부터, 도노반 맥냅은 온갖 종류의 말도 안 되는 끔찍한 헛소리들의 표적이 되었다

 

 

1999년 4월 17일까지 비교를 해보자면, 도노반 맥냅의 삶은 그렇게까지 멍청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가족은 모두 백인인 시카고 동네에 살면서 인종차별적으로 일어난 반달리즘을 감수했고, 그것은 확실히 매우 역겹고 멍청하다. 하지만 그는 그를 정말로 사랑했을 양친 밑에서 자랐으며, 고등학교 쿼터백으로서 팀을 주 챔피언로 이끌었고, 완벽하게 괜찮은 학교인, 시라큐스에게 전액장학금을 수여받았다. 거기에 있는 동안, 그는 방송 저널리즘을 공부했고, 몇 개의 역대급 패싱 기록을 세웠으며, 심지어는 짐 본하임 감독 밑에서 농구 또한 조금 뛰어보았다. 매우 좋은 한 때처럼 들린다.

 

하지만 1999년 4월 17일, 필라델피아 이글스가 슈퍼스타 러닝백 리키 윌리엄스를 대신해 전체 두 번째 드래프트 픽을 맥냅에게 사용했다. 그게 일어난 바로 그 순간은, 이렇게 들렸다.

이글스 팬들은 똑똑하다

그리고 바로 그 정확한 순간부터 시작해, 도노반 맥냅에게 발생했던 모든 것들은 여태까지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헛짓거리들이었다. 멍청한 아이디어, 멍청한 소문, 멍청한 대화, 멍청한 음식, 그리고 멍청한 개자식들. 내게 저기 야유하고 있는 신사 양반들이 멍청한 개자식들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그게 맞을 지도 모르겠지만, 저들의 야유소리가 어찌나 즉각적이고, 저주를 퍼부으며, 시끄럽고, 완벽한지 나는 차라리 저들을 시적인 추상이라고 받아들이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그날 저녁 건물에 있던 팬들, 그 중에서도 특히나 여섯 명은, 전혀 팬들이 아니었으며, 그 대신 사악하고 덜 떨어진 망령들이었다. 이들 각각은 다른 종류의 멍청함을 대표하며, 각각은 자신들의 유령 같은 비명 소리와 씩씩 소리와 야유 소리를 통해, 다가올 해들 동안 도노반 맥냅의 존재 위로 멍청함이 퍼부어질 것이라는 걸 약속했다.

 

그리고 세상에나, 정말로 그랬다니. 살면서 이렇게까지 무해하고, 순진한 운동선수가 동료 인간들에게 이렇게나 어마어마한 멍청함에 대한 영감을 주었던 적이 없었다.

 

★ ★ ★

첫 번째 장

토라도 해버리고 싶은 것처럼 보이는 형님이 보내드립니다:

토노반의 신화

올해 7월, 전직 이글스 코너백 리토 셰퍼드는 도노반 맥냅이 슈퍼볼 XXXIX의 허들이 치러지는 동안 속을 게워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네, 그랬어요 [...] 제 생각엔 그보다 심했을 걸요, 스크리미지 라인으로 걸어가면서였던가, 그랬을 거예요. [...] 제가 봤지요. 그냥 일어나버렸어요. 걸어가고 있다가, 아시잖아요. 뭘 할 수 있겠어요?

 

폭스 중계진은 스크리미지 라인을 향해가는 맥냅의 걸음을 대부분 잡아냈다.

 

세 가지 가능성들:

 

1. 맥냅이 어떻게 해서 스크리미지로 걸어가는 동안 굉장히 빠르게 토를 해버려 방송이 다시 필드로 돌아갔던 때에는 이미 정상으로 돌아왔다.

 

2. 맥냅이 저평가된 우아함과 함께 토를 할 수가 있어서, 정말로 그냥 걸어가는 동안에 몸을 수그리지 않고 그럴 수가 있었다. 더해서, 얼마나 많이도 토했는지 셰퍼드가 한 27m 쩜 떨어져 있는 사이드라인에 선 채로도 그걸 볼 수가 있었다.

 

3. 맥냅은 토를 하지 않았다.

 

3번이 가장 그럴싸해 보이지만, 신중하게 목격자의 증언을 검사해야할 필요가 있다. 맥냅의 직접적인 증언은 빨간 글씨로 표시되었다.

이것이 애초에 논의될 수라도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맥냅의 센터인, 행크 프랠리가, 며칠 뒤 한 방송국에서 맥냅이 “거의” 속을 게울 지경이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자, 물론, 이제 --

 

잠깐만. 이건 멍청하다. 이건 너무나도 멍청하다. 이제, 맥냅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듯이) 피곤했고, 프랠리의 첨언이 가진 맥락 안에서 보자면, 그는 그저 맥냅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힘을 들이고 있었는지를 묘사하려고 했었을 뿐이다. 그 대신에, 이 신화는 맥냅의 실패에 대한 증언으로 자라나고 말았다.

 

맥냅은 분명히 위대한 경기를 뛰지는 않았다. 그의 세 득점이 마지막 몇 초 동안 절박하게 던져보는 시도에서부터 왔다면, 다른 둘은 꽤나 끔찍하게 보인다. 퍼스트 쿼터에서 던진 것은 엔드 존에서 더블 커버리지가 되었고, 포스 쿼터에서의 중앙을 향한 짧은 패스는 리시버의 머리를 훌쩍 넘어가 버렸으니까.

 

그렇지만, 이 경기에서 또한 고려해야 할 것은, 맥냅은 슈퍼볼 역사상 최소로 350야드(320m)를 던져 세 개의 터치다운을 성공시킨 세 명의 쿼터백 중 하나였다는 점이다. 이글스는 러닝 게임을 그렇게까지 깔아놓을 수가 없어서, 맥냅이 팀의 총 공격에 있어 거의 90퍼센트를 담당하게 해버렸다. 그는 총합 51번의 패스를 던졌으며, 슈퍼볼 역사상 94명의 쿼터백 선발 주에서, 오직 짐 켈리만이 훨씬 더 많은 시도를 했다.

 

더 나아가서: 그렇다, 도노반 맥냅은 덩치만 커서 멍청하고 허약한 아기여서 상상으로 토를 했다, 하지만 그는 그 드라이브를 중대한 30야드짜리 터치다운 공격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가 어떻게 드라이브를 끝냈는지를 생각해보았을 때, 내게 드라이브 도중의 구토는 명예훈장처럼 느껴진다. 이 신화가 너무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오직 맥냅이 약골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꼴은, 비직관적이며 완전 멍청하다.

 

★ ★ ★

두 번째 장

빡친 채로 모자를 싸매고 있는 형님이 보내드립니다:

덩치만 커서 허약하고 멍청한 아기, 도노반 맥냅의 유령

 

이 유령은 맥냅과, 물론 우리 모두를 덮어버리고자, 걸러지지 않은 멍청함과 함께 첫 번째 유령과 협력했다. 토노반이 맥냅을 악조건에서 제대로 뛰지 못하는 약골로 보이게 했다면, 두 번째는 우리가 그가 딛고 일어난 모든 때를 잊기를 원했다.

 

만약 여러분이 더 많은 걸 알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잦은 부상의 경향을 운동선수의 심리적/정신적 체질의 지표로 인식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사람들은 맥냅에 대해 좋게 말해보기에는 논리적으로 빈약한 결론을 내리며, 오직 그와 함께 다른 쪽으로 달려 가버릴 뿐이다. 그의 뼈가 땅콩사탕으로 만들어졌고, 인대가 스냅 팔찌로 되어있다고 둬보자. 만약 그가 그런 걸 초월해서 13년차 NFL 경력을 짜 맞춘다면, 그건 인상적인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닌가?

 

 

이 도표는 누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부상 상태였는지를 알려주지는 않고(예를 들어서, 페이튼 매닝의 목은 그가 거의 한 시즌 전체를 나가떨어지게 했는데, 그는 거의 바닥에 있다), NFL 팀들이 가끔씩은 부상 보고를 거지같은 전략적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에, 정확하다고 취급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 양반들이 크던 작던 간에 얼마나 많고 다양한 부상들을 버텨냈는지를 나타낸다.

 

맥냅은 다른 것들 중에서도 등과, 팔목과, 무릎의 성가신 부상들을 감수하고 뛰었으며, 또한 발목 골절, 전방십자인대 파열, 그리고 스포츠 탈장으로 고생했다. 그가 이 부상들을 겪었다는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NFL 쿼터백들이 “허약하다”거나 “연약하다”고 부르는 게 편안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우리 중에 있다면, 차라리 다른 사람을 고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영광의 상처를 입은 쿼터백을 생각할 때면, 나는 특히나 세 개의 사례들을 떠올린다: 스티브 디버그가 손가락 골절에 이를 비집고 나온 노출된 철제 핀과 함께 경기를 끝냈던 것과, 브라이언 레프트위치가 다리가 골절된 채 드라이브를 끝내 팀원들이 그를 필드에서 내리도록 부축 받았던 것과... 거짓말하지 않고, 맥냅의 2005년 시즌 전체다.

 

두 번째 주에 진입하면서, 그의 흉부가 어찌나 나쁘게 파열됐는지 특수 제작된 어깨 패드를 달아야만 했다. 무언가 우스꽝스러운 꼴이었다. 계단 위에서 한 번 뛰어보라며 형이 베개를 묶어준 10살배기처럼 보였으니까.

 

그 날, 맥냅은 342야드(312m)와 터치다운 다섯 번을, 인터셉션 없이 던졌다. 패서 레이팅(155.4)에 있어서, 그것은 NFL과 AFL이 합병된 1970년 이래로 가장 지배적이었던 쿼터백 퍼포먼스 20개 중에 하나로 남아있다.

그의 흉부가 회복됨에 따라, 고간 부상이 부상 기록에 등장했다. 그것은 나중에 스포츠 결장으로 분류되었는데, 고간에 위치한 두 개의 상충하는 근육들이 한쪽이 찢어져버릴 때까지 줄다리기를 한다는 의미였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것은 완벽하게 비참한 경험이다. 맥냅의 수치들은 추락했지만, 그는 탈장을 가진 채 9주차까지 뛰었고, 그 주의 그는 태클을 시도하려다가 모든 기능이 쓸모없어질 정도로 고간이 찢어지고 말았다. 내게는 애초에 그가 어떻게 그 시점까지 갔는지부터가 일종의 기적과도 같다.

 

그 2005년 시즌 동안에, 이글스는 슈퍼볼 팀에서부터 6-10짜리 실망으로 떨어져버렸고, 팬들은 맥냅에게 이를 단단히 일러줬다. 그의 슈퍼스타 와이드아웃인, 테렐 오웬스가, 그를 강 너머로 완벽하게 팔아넘겼고, NAACP의 인사는 그를 인종에 대한 적대적이고 철저하게 무의미한 대화의 중심 소재로 써먹었다. 이글스의 선발로 뛰었던 그 시즌은 배은망덕한 모험이었고, 아마도 NFL 쿼터백이 여태껏 겪었던 가장 덜 만족스러운 캠페인이었을 것이다.

 

★ ★ ★

세 번째 장

가엾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고 있는 형님이 보내드립니다:

고통 받는 멍청이들의 끝없는 행진

 

많은 사람들이 도노반 맥냅에 대해 매우 멍청한 것들을 많이도 얘기했다. 가장 기억할 만한 두 개의 상황에 관심을 가져보도록 하자.

 

도노반 맥냅은 흑인이기 때문에 공이 너무 많이 돌려진다.

 

나는 [맥냅이] 애초부터 그렇게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이것은 NFL의 자그마한 사회적 신경거리일 뿐이다. 내 생각엔 언론매체가 흑인 쿼터백이 잘 할 것이라고 너무 많이 열망했던 거 같다.

- 러쉬 림보, 2003

 

만약 당신이 무지막지하게 부유하고 성공적인 백인계 미국인이라면, 당신은 흑인계 미국인이 그 자신의 인종에 있어서 훨씬 더 쉬운 위치에 있다고 주장하며 나서기 전까지 특히나 더욱 길고 오랫동안 생각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어, 앞서 언급된 흑인계 미국인이 기본적으로, 제도적인 측면에서부터, 백인을 위해 설계된 직업을 갖고 있다면 10배는 더 생각해야 할 거고.

 

흑인 선수들은 풋볼 필드의 거의 모든 포지션에서 규모 있게 대표되지만, 맥냅이 입장하기 이전까지는, 리그의 역사상 주목할 만한 흑인 쿼터백의 수를 거의 한 손으로 셀 수가 있었다. 그것은 사고가 아닌데, 그 정도의 운에 비하면 샘플의 규모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흑인 선수들은 그저 쿼터백을 맡는 것에서부터 억제되고 다른 포지션으로 이끌어지거나, 과소하게 채용되거나, 팀들을 놀래 쫓아버릴 정도로 일상적이지 않은 감시와 함께 스카우트되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바로 그러한 이유로 흑인 쿼터백이 잘하는 것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다는 림보의 단언을 곧장 지지해준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만약 이것이 그와 같은 양반이 말을 하는 것이라면, 그의 전제가 아마도 완벽하게 맞아야 할 것이다.

 

그는 그렇지 않았다.

 

 

맥냅은 애초부터 그렇게 좋았다. 림보가 해당 발언을 하던 시기에, 맥냅은 풀 시즌을 셋 뛰었으며 누적 82.2라는 패서 레이팅을 유지했다. 이 수치는 파브의 첫 세 시즌에서부터 매우 가까웠으며, 트로이 에이크먼과 드류 블레드소의 것들보다 훨씬 더 낫다.

 

패서 레이팅은 러싱을 고려하지도 않는다. 저 시즌 동안의 풋볼에서 맥냅이 최고의 러닝 쿼터백이었을뿐만 아니라, 그는 그 어떤 포지션에 있는 모든 선수들 중에서도 러싱 야드가 33위에 올랐다. 그의 그라운드 게임까지 고려한다면, 맥냅의 그의 나이대에서는 이례적인 쿼터백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림보는 저 발언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ESPN에서 사임했으며, 이는 림보의 라디오를 듣는 수백만 시청자들 사이에서 맥냅이 마치 도금된 가마라도 탄 채 정치적 올바름 경찰™들이 떠받드는 특권층 세자라도 된 듯 인식하는 것이 활개 치게 했다. 정말인지 무슨 신시내티의 AM 라디오 진행자가 그런 얘기를 할 수는 없었던 걸까? 하필이면 21세기의 가장 영향력 높은 정치인사 중에 하나였어야만 했나?

 

아니. 도노반 맥냅에게 있어서, 일들은 다른 쪽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도노반 맥냅은 더 이상 뛰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인종을 비난한다.

 

2005년에, J. 와이엇 몬데시어, 필라델피아 신문의 소유주가, 이상한 결론으로 넘어가버리고, 자기 자신과 상충하며... 솔직히, 좋은 글쓰기도 아니었던 칼럼을 하나 썼다. 해당 칼럼에 누가 쥐뿔이라도 신경 썼던 유일한 이유는 J. 와이엇 몬데시어가 또한 필라델피아 NAACP의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러한 양반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인기 있는 스포츠 이야기들을 소비했다. 다시 한 번, 이것이 바로 맥냅이 유혹했던 멍청한 헛짓거리의 특색 있는 맛이었다. 도저히 인종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가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건 인종에 있어 그 누구에게 그 무엇도 이해시켜주지 못할 정도로 뭣 같이 멍청한 기도여야만 했다.

 

몬데시어는 맥냅의 효율성을 최소한 림보가 그랬던 것만큼 잘못 판단했다.

 

 

2004년에, 맥냅은 작년에 그랬던 것보다 60퍼센트를 더 뛰었다. 그의 패서 레이팅이 평균이하였던 2003년의 79.6에서부터 2004년에는 눈부신 104.7로까지 솟아올랐던 이유가 분명히 그것만도 아니었지만, 확실히 분명하게 주된 요인이긴 했다. 몬데시어는, 보아하니, 그저 숫자만 보고 있던 게 아니었다.

 

스포츠라이터들은 언제나 그렇게 하는 데에 실패하고, 몬데시어는 애초에 스포츠라이터조차 아니었으니까, 그는 말없이 여기에서 멈춘 다음에 악명 속에서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 대신에:

 

핵심만 말하자면, 도니, 당신은 잘해봤자 평범할 뿐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스크램블도 하고 공을 들고 뛸 수도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쿼터백들이 어째서인지 변덕스럽게 던진 패스로도 정확한 패스를 소환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 덜 실력 있는 야전사령관이라는 웬 날조된 추론 뒤에 숨기려고 하는 것은, 필드 위에서보다 필드 바깥에서 더 모욕적이다.

맥냅은 그저 흑인 쿼터백들이 스크램블하기를 기대 받는다고 얘기했을 뿐이며, 이는 완벽하게 참이다. 잠시 동안 사적으로 굴어야겠는데: 루이스빌 카디널스가 테디 브릿지워터를 영입했을 때, 내 첫 생각은, “오 대박, 저 양반이 공들고 뛰는 거 보면 웃기겠네.”였다. 나는 스스로 말려들어버려, 수치를 찾아본 다음에, 그가 거의 전혀 공을 들고 뛰지 않는다는 걸 알아냈다. 그가 그랬다는 걸 내가 찾아냈더라도, 나는 여전히 자신이 어마어마한 멍청이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인종에서부터 착안한 억측들은 깊숙하게 파고들곤 하며, 내 생각에는 아무도 몬데시어에게 그것에 대해 얘기해주지를 않았던 거 같다.

 

하지만 러닝 쿼터백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보고자 하면서, 맥냅은 지난 30년 간 흔적이 남을 정도로 충분히 오랫동안 붙어있던 다른 거의 모든 흑인 쿼터백들이 세워놓은 표준적인 설정을 부수고 있었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동안에, 더그 윌리엄스는 다른 모든 쿼터백들보다 훨씬 더 많이 달렸다. 같은 일은 80년대 후반의 랜달 커닝엄과, 90년대 초반의 로드니 피트도 그랬으며, 그 이후로는 코델 스튜어트, 제프 블레이크, 그리고 스티브 맥네어도 그러했다. 워렌 문이야말로 유일무이한 예외였다. 저 덩어리에는 여전히 부숴야할 게 많이 남아있다.

 

맥냅은 사람이었기에, 타입 캐스팅되는 것을 싫어했지만, 적은 사람만이 그럴 수 있었다. 그가 벌었던 게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그러더니 당신은 인종 카드를 냈고 사실상 우리 모두가 당신의 자랑질에 넘어갔다. 당신을 말이야 우리에게 사기를 쳤고 “진짜배기로 남아있기”를 참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다.

우리도 입 다물고 있을 수 있었다, 당신이 효율적이거나 승리자로 남아있을 다른 방법을 찾았으면 말이다. 하지만 당신의 재능이 보통내기라는 게 이렇게나 확실해졌으니 이제 나서서 말할 때가 온 것이다.

 

그거 따끔하다.

 

“당연히,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닌 다른 누구라면, 인종차별이겠지요.” 맥냅은 지난주에 열렸던 자신의 명절 파티에 참석해 기자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같은 인종의 사람이 당신에 대해 공을 들고 뛰지 않으니까 돈에 팔린 거라고 얘기한다면,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가는 거죠, ‘여기서 우리가 정확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데?’”

“제 플레이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그거는 그거대로죠. 제 인종에 대해서 말씀하신다면, 이제 문젯거리가 생긴 거고요. 만약 제 이름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은 거라면,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당신 안쪽에 있던 것이 꺼내질 참이니 옷장이나 깨끗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저는 언제나 NAACP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지지했고 그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 생각했거든요. 이제 조금 더 알게 된 거죠.”

NAACP는, 자기 역할을 맡아서, 몬데시어의 칼럼을 비난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동안, 미래주의적인 사람들은 스포츠가 언젠가는 전쟁을 대체할지를 궁리했는데, (운동선수로서) 정복하고, (팬들로서) 속하며, 폭력을 경험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이 좋은 풋볼 경기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겠다는 추론 때문이었다. 이 생각은 다른 게 아니라면 흥밋거리가 되며, 우리가 풋볼만으로 그걸 처음으로 경험하게 될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논쟁으로, 논리 없는 관심종자 짓이나 실천 이외에는 확실한 진짜 목표가 없는 것으로서 생각하지는 않고서는 인터넷 메시지 보드에서 읽었던 이 정치 인사들의 말을 읽어내거나 수정헌법 제5조에 대한 수 백 개의 중요한 판결문을 도저히 기억해낼 수가 없다. 무엇을 위한 실천이냐고? 더 많은 실천이겠지, 아마도.

 

우리는 심지어 버나드 홉킨스가 맥냅이 교외에서 자랐다는 것만으로 본질적으로 “집 검둥이”라고 불렀던 것에는 가지조차 않았다. 헛소리가 그저 오고 또 오고 또 오고 있으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상에, 왜들 대체 이런대?

 

★ ★ ★

네 번째 장

가장 최고의 필라델피아 팬인 형님이 보내드립니다:

필라델피아

나는 문화지리적 예외론에서부터는 한 발짝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소한 미국이라는 맥락에 있어서는 말이다. 나는 그게 거기 있다는 걸 이해하며, 만약 내가 우연히 필라델피아에서부터 온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 사람은 캔자스주의 위치타에서부터 동일한 사람과 꽤나 다를 것이다, 그들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의 측면에서 말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필라델피아와 위치타와 로스앤젤레스와 조지아주의 디케이터와 시카고에서 온 사람들을 알고 있으며, 많은 부분에 있어서 그들의 성격 특징 중 하나를 골라서 여러분에게 왜 그들이 하필 그런 식인지를 설명할 수가 없다. 이 나라는 여러분이 믿어왔던 신화들보다는 훨씬 더 동질적이다. 필라델피아의 스포츠 팬은 분명히 뉴욕의 팬과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을 것이며 그 또한 앨라배마 팬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도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특정한 극단이나 또 다른 것을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의심스럽다.

 

하지만 신께 맹세하건데, 이글스가 9월에 있을 도노반 맥냅의 은퇴식에서도 야유를 한다면, 나를 조금 시험에 들게 할 것 같다. 지난 달에, 필리닷컴은 맥냅에게 야유를 당할 것이라 예측하는지 물어보았다:

 

전 정말로 신경 쓰지 않아요. 저에게 그것은, 제가 해낸 것을 진정으로 존중해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이니까요. 저는 언제나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단 격언과 함께 살아왔어요. 그러니까, 저에겐 말이죠, 야유를 당한다면, 전혀 새로울 게 아니라는 거죠. 만약에 환호해준다면, 정말 좋겠죠. 당연히 가족들과 함께 뛰었던 팀원들과도 거기 있을 거니까요. 만약 야유가 하나라도 있다면, 미소 짓게 되겠죠.

 

누군가는 필라델피아 스포츠 팬의 야유가 단순한 야유 이상이라고 주장할 것인데, 거기에는 미묘한 애착의 야유가 있고, 만약 저들이 정말로 맥냅에게 야유를 한다면, 그저 저런 식으로 군다는 것이다. 보아하니, 최소한 은퇴식이 가는 것에 있어서는, 사실이 아닌 듯 하다.

 

보이 스카웃 303부대가 공연했던 깃발-은퇴식은, 차라리 약간의 팡파레를 이끌어냈던 근엄한 추문이었다. 관중은 다른 이들에게 있어서는 더하거나 덜하거나 미쳐 날뛰었다. 그들 중에 단 한 명만을 보겠다면, 맥냅의 오랜 팀원이었던, 브라이언 도킨스의 것을 보면 된다.

 

#20 브라이언 도킨스 은퇴식 - 9/30/2012

 

도킨스의 하이라이트 영상에는 눈부신 빛의 향연과, 우레와 같은 폭죽과, 군중의 숭배하는 함성이 함께 수반된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들뜨는 기분이 든다. 유라시아를 정복하고 자신의 대륙만한 제국의 타이베리움 광산을 사수한 22세기 장군의 복귀환영회를 보는 것만 같다. 필라델피아는 이 양반을 사랑한다.

 

그래, 자 이제 맥냅이 딱 이것과 같은 세레모니를 받는 걸 상상하고, 웃고 싶은만큼 자유롭게 웃으시기를 바란다.

 

그의 시대 최고 수비수 중 하나였던 도킨스가, 이렇게나 폭발적인 쇼를 선사받는다는 건 완벽하게 말이 된다. 수비라는 게 모두 징벌고통전념심장전쟁전사들에 대한 것이니까. 얼마든 군중의 소음에 손을 흔들어주고 무책임한 전기톱 시연회를 따라해도 된다.

 

쿼터백은, 상대적으로 말하자면, 입이 봉해진 편이다. 모든 NFL 쿼터백은 친구의 아버지와 같은 품행을 유지하기를 기대 받는다: 여러분 앞에서는 절대로 짜증내거나 화내지 않고, 맥주 한 잔 하기 위해 텔레비전 앞으로 걸어가면서 “어이 친구들! 비디오 게임은 좀 어때!”만큼이나 대충 의미 깊은 대화만을 할 수 있다. 만약에 캠 뉴튼이나 제이 커틀러처럼 이 모델을 그다지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끝없이 조사받을 것이며, 심리학과 형이상학에 대한 이해력이 톰 클랜시 소설에서 시작하고 끝내는 멍청이들이 떼거지로 해체하려 들 것이다.

 

맥냅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친구 아빠의 페르소나를 정말로 따르는 편이었다만, 그는 또한 자신이 야유 당하는 것을 즐기지 않고, 인종적인 문제들로 언급되거나, 기타 등등을 즐기지 않는다고 알려주고 싶어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부루퉁한 프리마돈나처럼 인식되었다. 이러한 식의 첨언들이 이러한 인식에 기여한다. 지난 달, 그는 필라델피아 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저 분들이 이글스를 사랑해주고 풋볼 경기도 사랑하는 진정한 팬들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연히, 고집이 세긴 하죠. 하지만 팀을 사랑하잖아요. 그냥 승자들을 보고 싶을 뿐이란 거죠.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저희가 그 분들에게 그걸 준 거고요.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승리가 충분치 않게 된 거죠. 모든 게 슈퍼볼에서 우승하는 일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이해할만하죠. 저희도 선수로서 (04년도에) NFC 챔피언십을 승리한 이후에 똑같은 태도를 취했으니까요. 슈퍼볼을 우승해야 한다고 느껴졌죠. 그리고 그게 일어나지 않았던 거고요.

 

나는 여기서 무언가 화낼 수 있을만한 거리를 찾아보려고 했다. 정말로 볼 수 있던 것은 필라델피아에서 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인터뷰의 다른 부분에서, 그는 전직 필리 선수였던 위대한 짐 톰이 자신에게는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얘기했던 걸 언급하다), 그와 동시에 팬들의 기대감이 적절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필라델피아 스포츠 매체들은 저 반응을 싫어했다. 아아아아아아아주 싫어했다. CSN 필라델피아의 루벤 프랭크는, 자신의 은퇴식에서 야유당하는 것에 대한 맥냅의 위 반응에 다음 같이 답했다:

 

박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니까요. [...] 다시 한 번 인용구를 읽어보세요. 팬들이 왜 그를 죽이려드는지 알고 싶어요? 바로 저런 식의 언사 때문이죠.

도노반이 여기 나왔을 때에는 멋진 관계를 맺을 수가 있었죠. 자기 시간을 굉장히 멋있게 보냈고, 인터뷰도 잘 했고요, 필드 바깥에서도 이글스를 부끄럽게 하는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냥 입 좀 다물고 있어야 하는 거예요. 지긋지긋합니다 이런 거는.

 

맥냅의 반응을 읽으면서 프랭크의 반응을 나란히 두고 보면 볼수록, 더욱 더 혼란스러워진다. 맥냅은 10년 넘게 한 팀을 위해서, 그리고 꽤나 잘 뛰어왔는데, 그는 야유와 조롱과 감시로 답을 돌려받았고, 이것이 힘들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자, 그는 “박해 콤플렉스”를 갖게 되었다.

 

몇몇의 필라델피아 스포츠 블로그들 또한 맥냅의 말들에 마찬가지로 이를 갈아댔고, 그 중 한 개 이상에서는 그가 톰의 반응을 꾸며냈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필라델피아가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을만한 남자인, 짐 톰에게 야유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겠지?

 

필라델피아가 일요일에 피츠버그 파이리츠에게 2-0로 지고 있던 5회에, 파이리츠의 투수 크리스 벤슨이 높이 공을 쳐올렸고 톰은 태양빛 속에서 위치를 잃고 잡지 못했다. 그 즉시 베테랑 스타디움이 불쾌하게 들려오는 야유 소리의 거대한 합창과 함께 폭발했다.

톰의 다음 타석에서, 필라델피아 팬들은 다시 한 번 톰에게, 훨씬 더 시끄럽게 야유했다. 한 남자가 십 수개의 다른 지독하고 지저분한 욕설들 사이에서 크게 울부짖었다, “클리블랜드로 돌아가, 이 멍청한 먼지 더미 같은 놈아!”

 

나는 여전히 필라델피아 팬들의 악명이 그들보다 선행한다고 간주하며, 만약 그들이 시카고 팬들이나 샌 디에고 팬들보다 훨씬 더 상스럽다면, 이는 10퍼센트나 그 미만의 비율 정도에서만 그렇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로 도킨스에게 내주었던 따스한 접대에 뒤따라 도시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쿼터백인 맥냅에게는 잡아 죽이기라도 하듯 야유를 퍼붓는다면, 아마도 이 생각을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하나님 맙소사, 이 양반은 멍청함-자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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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장

단호한 역따봉 형님이 보내드립니다:

싸움을 끝내고, 멍청함을 받아들이기

 

그의 NFL 경력이 2011년에 유효하게 끝났기에, 맥냅은 TV 해설자로 경력을 전환했다. 그에게는 꽤나 잘 맞는데, 애초에 그가 시라큐스 대학에 출석했던 주된 이유 중에 하나가 그곳의 방송 저널리즘 프로그램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이걸 꽤 잘한다.

 

‘이걸 꽤 잘한다’에 함축된 의미를 맘대로 생각해주시길. 작년에, 제츠와 함께 계약을 하면서, 팀 티보는 제츠 선수가 되는 것이 들떴다는 것에 대한 몇 가지 무해한 얘기들을 트윗하며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맥냅은:

 

팬들을 당신 뒤에 두기 위해서 계속해서 노력하실 필요는 없어요. 매번 우리가 찾아볼 때마다, 뭔가 그런 게 있잖아요, 티보가 팬들에게 연락하면서, 그들에게 “사랑해요,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이걸 해내고 있다고요.”라고 말하잖아요.

 

맥냅이 정말로 이 짓거리에 신경 쓸 리가 없다, 아닌가? 아닌가? 나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가 정말로 웬 선수가 “풋볼 만세”라고 트윗하는 것에 신경을 퍽이나 쓰는 걸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자신의 직업 기재사항에 따라서 그냥 연기하는 걸지도 모른다.

 

어느 쪽 경우든 간에, 그는 이를 완벽히 얻어냈다. 그는 십 년 넘게 그를 쫓아다닌 이 크고 멍청한 괴물을 박피해서 그 가죽을 우비처럼 입고 다닐 권리를 따냈다. 그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머지 기간 동안을 스킵 베이레스처럼 굴 수 있을 것이고, 그는 자신의 자그마한 잘못으로 촉발시켜버려 모든 각도에서 견뎌냈던 멍청함의 홍수 같은 떼거지를 닮아버리는 것에 가까워지지도 않을 것이다.

 

맥냅은 최신 프로그램인 폭스 스포츠 원에 속하게 되었다. 이 환경이 실제로 의미 있는 논의에 이바지할지, 아니면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스포츠 멍텅구리 발할라가 될지는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나는 맥냅이 얼마나 똑똑하거나 멍청하거나 간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라면 무엇이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저 모든 헛짓거리가 무엇이라도 망쳐버리지 않았다면, 이건 그냥 맞는 이야기가 아니게 될 테니까.

 

베이레스: 이 리그의 역사상 가장 불공평하게 과다-비판된 쿼터백이 팀 티보예요.

맥냅: 아닙니다. 저에요. 저라고요.

 

틀리지 않았어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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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장

단념하면서 자리에 앉는 형님이 보내드립니다:

 

 

건더기 수프의 어리석음

 

맥냅이 그의 경력 동안 기억에 남을 정도로 선전했던 캠벨사의 건더기 수프는, 오랫동안 “주유소 음식” 모임의 페리에로서 받아들여져 왔다. 명백하게 냉동 피자보다 덜 유독하고, 도리토스 한 봉지보다 훨씬 더 고귀하며, 비엔나 소세지 한 통보다도 더 맛깔나게 그릇을 채울 수 있으니까.

 

이것은 또한 철저하게 없어도 상관없으며 무지하게 쓸모없다.

 

 

건더기 수프의 특정 종류들에 들어간 채소들이 영양분의 오아시스를 품고 있다는 건 논쟁의 여지가 없겠지만, 맥냅이 수프에 대해 증언하는 한 마디, “식사처럼 먹을 수 있는 수프”는 칼로리적 내구성을 암시한다. 사실은, 고기와 채소 수프 한 캔은 고작 240칼로리, 표준적인 크기의 초콜릿 바 정도만큼을 함유한다.

 

누군가는 제대로 된 식사를 구성할 정도로 충분한 칼로리를 쌓아올리기 위해서는 두 캔을 소비해야할 것이고, 그 시점까지 오면 당신은 미국의 평균적인 성인에게 제안되는 하루 섭취량의 75% 정도인 1,700 밀리그램 이상의 나트륨을 섭취한 것이다. 나트륨은 맛의 최강 통화이며, 국물과 알 수 없는 고기로 이를 거의 다 탕진해버린 것이다. 만약 이것을 점심으로 먹는다면, 저녁으로는 빵을 먹어야 할 것이다. 그냥 빵만.

 

그리고 한 캔이 보통은 주유소에서 3달러 이상이 나가니까, 이 무의미한 짓에 거의 7달러를 써야하는 것이다. 더욱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재료들

 

$1.50 = 스튜용 고기 1파운드

$3 = 순살 쇠고기 갈비 1파운드

$1 = 잘게 썬 양파 1개

$1.50 = 잘게 썬 당근

$1.50 = 잘게 썬 샐러리

$3 = 4등분한 작은 감자

$3 = 간 안 친 쇠고기 육수

$.40 = 신선한 다진 마늘

$10 = 괜찮은 레드 와인 한 병 (까베르네가 이상적)

 

총가: ~$25, 혹은 건더기 스프 약 8캔 가격

 

필수 부엌 용품: 큰 수프 냄비, 조리기, 나무 숟가락, 버터, 밀가루, 소금, 후추, 필요한 양념

 

중간 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는다. 밀가루 옷이 잘 입혀질 때까지 고기를 굴린다. 냄비에 버터를 조금 녹여서 모든 쪽이 갈색이 될 때까지 고기를 구운 다음에, 다시 빼낸다. 육수를 데우는데, 전자레인지로도 딱 충분할 것이다.

 

설탕을 없애기 위해서 와인을 조금 붓는다. 나무 숟가락으로 밑바닥을 긁어내서 갈색 덩어리들을 섞는다. 마늘을 추가하고, 30초나 그 정도 기다린다. 그 다음에는 조심성 있게, 그러므로 냄비의 열을 그렇게까지 낮추지는 말면서, 양파와 당근과 샐러리와 감자를 넣는다. 종종 저어주고, 양파들이 부드럽고 투명해질 때까지 요리한다.

 

소금과 후추로 양껏 양념을 쳐준 후, 고기와 육수를 추가한다. 냄비에 공간이 조금 남아 있으면 물을 더 추가한다. 농도를 확인해본다. 좀 더 진한 맛이 좋다면, 추가적으로 밀가루를 자유롭게 넣은 다음, 제대로 섞어준다. 뚜껑을 덮고, 한바탕 끓여준 다음에, 살짝 뚜껑을 열어줘서 할 수 있는 최소한으로 열을 줄여준다. 한동안 끓도록 해주는데, 한 시간 정도면 좋겠고, 두 시간이나 그 이상이 이상적이다.

 

이제 당신은 완벽하게 맛있는 소고기 스튜를 완성했다, 도시락으로 챙겨가거나 나중에 먹기 위해 얼려둘 정도로 풍부하게 몇 그릇이나 나왔고, 즐길만한 와인도 거의 한 병 있으며, 제대로 끝마친 작업의 만족감도 있다. 맛있게 드시라.

 

편집자 : 크리스 모트럼 | 이미지 : 게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