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 번역

겁먹고 반쯤 죽은 소매업 제국, 라디오색에 바치는 추도사

저희는 라디오색의 추모를 위해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라디오색은 그 노동자들을 몰랐고, 스스로의 끔찍함도 몰랐거나, 아님 아는 데도 모른 척을 했겠죠.

 

 

존 보이스 | 2015년 12월 2일, 오후 12시 23분 (동부 표준시) | 번역: 42O

 

 

추수감사절에 개장하는 가게에 라디오색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속해있는 특정 조직 군에서는 그렇게 할 만한 유일한 곳일지도 모른다. 이곳은 추가 수당을 받고 싶어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먼저 골라질 수 있는, 월마트나 콜 센터가 아니다. 대부분의 라디오색 가게들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한 줌밖에 되지 않아서, 원하든 그렇지 않든 추수감사절에 일하게 된다. 소매업 직원들은 신성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것들이나 팁을 누릴 일이 정말, 정말로 적다. 추수감사절을 따로 즐기는 것 또한 그 중에서 하나다.

직원들의 저항 끝에, 라디오색은 아주 조금만 더 해줄 뿐이었다: 추수감사절에는 원래 계획된 대로 오전 8시부터 자정까지 연 다음에, 가게들은 그 친구들이 가족들과 함께 아주 조금 지낼 수 있도록 이제 하루에 몇 시간 정도는 닫힌다.

라디오색은 어마어마한 부동산을 가진 기업이며 2014년에는 완전히 성장 불가능한 사업 모델을 아직도 강요 중이다. 곧 있으면 사라질 게 뻔하고, 운영진들이 할 수 있는 게 남았다는 점은 의심스럽다. 이런 경우에는, 행복한 이야기나 쉬운 답은 없고, 만약 다른 기업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추수감사절에도 가게를 여는 게 후회할만하지만 기업과, 직원과, 그 모두를 살리는 것에 굉장히 중요한 시도라는 건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기업이 지난 십 몇 년을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가운데, 직원들의 행복은 언제나 가장 처음으로 내버려졌다. 매니저들은 너무 열심히 일해서 스스로의 매우 불행하고 반 정도만 깨어있는 그림자가 되었다. 노동법은 언제나 뻔뻔하게 무시되어왔다. 기록되지 않은 몇 시간동안의 노동에 대한 급여는 지불되지 않았다 (내가 그만뒀을 때엔, ‘좋은 관계’에 이 주 간의 공지와 함께, 내 마지막 급여는 몇 달 동안 보류되었고, 내게 왜 그러는지 이야기해주지도 않았다). 변호사들이 라디오색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웹 싸이트를 닫기 위해 보내졌다. 기업이 몇 백만 달러짜리 계약을 중개하는 동안 최저임금에서 몇 백 센트 정도만 더 벌은 직원들은 그들에게 억압받고, 모욕당하고, 고함소리를 들었다.

라디오색은 근무하기에는 썩어빠졌고, 물건을 사기에는 보통 그렇게 좋은 곳도 아니며, 운영할 수가 없는 사업이다. 모든 것들에 상실이 포함되었다. 

이 글은 내가 삼 년 반 동안 라디오색에서 일한 이야기다.

 

I. 

블랙 프라이데이가 십 년 전쯤에 그랬던 것과 같지 않기를 바라지만, 많은 게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2004년 연말 연휴 기간 동안, 나는 오가는 사람이 사실상 단 한 명도 없이 죽어가는 몰의 라디오색에서 일하고 있었다. 보통 서너 명 정도 되는 직원들 사이에서 물건 판매가 쪼개지면 주어진 임무에서 돈을 버는 건 힘들다. 라디오색은 개인의 기나긴 파멸에 헌신하는 기업이기에, 블랙 프라이데이 직전에 직원들을 세 배 더 썼고, 그 누구도 돈을 벌 수 없다는 걸 확실히 해줬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라디오색은 언제나 광고의 활력을 담당하고 있는 신문 전단지도 갖다버리기로 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없었지만, 못 버는 것보다도 더 못 벌 것이라는 걸 보장해줬다.

오전 4시 30분. 우리는 지역 사무소의 요청에 따라 가게가 열기 한 시간 하고 반전에 나타난다. 주위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전 6시. 우리는 몰려들어오는 손님들을 기대하며 줄을 선다. 여섯 명은 가게 한 쪽에, 다른 여섯 명은 다른 쪽에, 보이지 않는 관의 운구자들처럼. 매니저가 가게 문을 연다. 아무도 기다리고 있지 않는다.

오전 7시. 아무도 가게로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그 어떤 사람도 가게 옆을 지나가지도 않았다. 이건 매니저를 격노케 하고, 이 위기 상황에서 한 명의 직원을 골라서, 바로 그 자리에서 해고한다, 왜냐면 그녀의 스웨터는 드레스 코드와 맞지 않는 빛깔의 빨강이기 때문이다.

오전 8시. 누군가가 거의 들어올 뻔했다. 그녀는 가게 쪽으로 도는 듯 하고, 우리 11명 모두가 그냥 서서 자기를 지켜보는 걸 보고, 180도 돌아간다. 그 쪽 탓이 아닙니다, 손님.

오전 9시. 첫 손님! 누군가 그냥 걸어 들어오더니 무선 전화 배터리를 사갔다. 우리 중 하나는 23센트(세금 공제 후에는 18센트)에 가깝게 벌었고, 다만 보통 도달 불가능하고 독단적인 구성의 월간 판매 실적을 넘길 때까지는 그 어떤 판매 임무도 받지 못한다. (난 라디오색에서 43달 동안 일했고, 딱 한 번 이 양에 간신히 닿아보았다.)

오후 12시. 우리는 아마 90달러 정도 되는 물건들을 팔았다. 직원이 두 명 더 걸아나간 다음 돌아오지 않았다. 

오후 2시. 한 연인이 내가 몇 주 전에 팔았던 휴대폰 한 쌍을 반품하러 들어온다. 나는 그것을 팔아 마지막 봉급에서 40달러 정도를 받았고, 이제 그들은 내 다음 봉급에서 40달러를 가져갈 것이다. 휴대폰 계약을 취소하는 건 전화를 기다리고 셋이나 넷 정도의 다른 게이트키퍼들과 대화하느라 한 시간 정도가 걸리는 일이다. 이번에는, 심지어 더 긴데, 누군가가 그들에게 취소 요금 200달러를 무작정 후려갈겼기 때문이다. 내 매니저는 이거를 알게 되고 내게 고함지르기 시작한다: “존, 뭘 한 거야? 존나 대체 뭘 한 거냐고?” 그러더니 그녀는, 대들지 않는 내 손님들과 함께 고함 대결을 시작해보려 한다.

오후 3시. 직원 두 명이 더 그만두는데, 하나는 매니저가 10.5시간짜리 근무 이후 그녀에게 점심 식사 휴식 시간을 주기를 거부해서이다. 

오후 9시. 자비롭게도, 그리고 심연 너머로까지 치닫는 판매량과 함께, 우리 구역 사무실이 계획한대로, 가게를 닫고 자정까지 열지 말라고 말해준다. 다른 사람이 폰을 반품하기 위해 찾아 와서, 내 판매량은 이제 구덩이에서 60달러 정도다. 나는 한 시간에 5.45달러를 만들고, 16.5시간짜리 근무를 서왔으니까, 그렇다면 90달러 정도일 것이다. 거기에 내가 잃은 60달러를 빼면, 그건 30달러. 그래서 오늘, 나는 한 시간에 1.80달러를 만들었다, 거의 17시간이 되는 근무 시간 동안에. 세금을 빼기 전까진. 

오후 9시 45분. 하 하 하 하 나 아직도 가게에 있네, 돈을 세고 청소하고 도와주고 그러고 있지만, 그에 대해 값을 받지는 못한다. 이건 라디오색스러운 거다: 만약 가게가 닫아있는 동안 일을 하면, 가끔씩은 돈을 주기로 정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절대로 돈을 주지 않는 셀 수 없는 시간동안 일을 했고, 이게 바로 그런 거다. 우리는 마침내 문을 닫는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나는 내 매니저에게 크리스마스 이브동안 쉴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데, 이것은 내가 켄터키의 집으로까지 일곱 시간을 운전해 돌아간 다음에, 다시 돌아오는 걸 가까스로 할 수 있는 정도다. 그녀는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아니라고 고함을 지르고, 내게 내가 특별하지 않다고 말해준다. 

 

II. 

저 이야기는 가게 매니저를 지구상 최악의 여자로 그리는데, 절대로 사실이 아니라고 맹세한다. 마음에 있어서 그녀는 좋은 사람이었고, 주된 스트레스/불안 문제를 겪고 있었으며, “라디오색 매니저”는 그런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이나 아님 그냥 아무 사람)에게 딱 최악의 자리일 것이다. 매니저가 되는 것은 그녀를 비참하고 건강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게 사람들에게 으레 하는 경향처럼. 

나는 내 라디오색 경력을 거쳐 오는 동안 열 몇은 넘는 각기 다른 매니저들을 봐왔다. 그들 중 하나이자, 나의 친구이기도 했던 사람은, 취해있는 것으로 그걸 다뤄봤다. 나는 종종 그에게 직장에서부터 출퇴근길을 태워다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주유소에 잠시 들려서 24 팩짜리 버드라이트를 사갈 수 있냐고 물었다. 그 때 나는 21살이 아니었기에, 이거는 내게 꽤나 괜찮은 거래였다. 나는 주차장에서 그와 맥주 한 두 캔을 마셨고, 그 다음 그는 들어가서 하룻밤동안 나머지를 전부 해치웠다. 그에게 뭔가 말을 해주거나, 아니면 뭐든 행동을 취했어야 했겠지만, 나는 20살이었고 그 때 내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 

 

III. 

나의 다른 매니저는 영구적인 탈진의 상태에서 비틀거리면서 삶을 뚫고 왔다. 우리 가게 전체에는 정확히 세 명의 직원들이 있었는데, 내 동료 직원과 나는 한 주에 40이나 50시간을 일했으며, 그는 운이 좋다면 최소한 70시간을 일했다. 주어진 어떤 시간에도 가게에 직원이 딱 하나만 있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가끔씩은, 가게에 그 어떤 고객도 없을 때에, 그는 뒷방에서 낮잠을 자곤 했다. 한 번보다 더 많이, 그가 거기에 있었을 때에, 누군가가 들어와서 몇 백 달러는 족히 될 물건들을 선반에서 훔쳐갔으며 걸리지 않은 채 걸어 나갔다.
 
그는 그냥 뭣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가끔씩, 다양한 책임 의무 때문에, 그는 한 주에 80, 90시간씩을 일했다. 그는 욕구의 위계에 있어서 꽤나 낮은 편이었다: 그는 물건을 파는 것이나, 부탁받은 일을 하거나, 좋은 가게를 운영하거나, 그 어떤 종류의 경력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그냥 생존해보려 했다. 그는 다음 한 시간 동안 살아있는 사람이 되는 걸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한 해에 23000달러를 벌었다. 

IV. 

그와 나는 가끔씩 재고 조사 때문에 우리의 근무 주간이 다섯에서 열두 시간은 더 늘어나는 꼴을 보곤 했다. 소매업에서 일했던 많은 양반들은 아마 이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몇 달에 한 번씩, 우리는 근무 시간 이후에 남아서 재고품들을 세어야 한다. 가게의 컴퓨터가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하는 모든 물품을, TV부터 트랜지스터에 배터리까지, 하나하나씩 소설책 쓰듯이 뽑아낼 것이고, 그런 다음 우리는 가게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그걸 전부 다 갖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이것은 좋은 재고품 조사 하에 자정까지 새거나, 아니면 내 매니저가 얼마나 강박적인지에 따라서 아침 다섯 시까지 새는 것을 의미했다. 라디오색은, 그들의 직원들을 위해서, 매우 쉽게 이것들을 정기적이거나 사전에 계획해놓을 수 있었겠지만, 라디오색은 내가 오로지 자신들이 채용한 이들에 대한 열려있는 경멸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겁 많고 냉혹한 개체였다. 높으신 분들은 아마 하루 전에 우리에게 그것들을 던져주는 걸 선호했다. 

이것은 주된 노동법 위반이지만, 그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가끔씩 그들은 가게가 닫기 한 시간 전에 전화를 걸어서 우리가 새벽 두 시까지 거기에서 밤을 새야한다는 걸 알려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걸 승낙하던가 아님 해고되었다. 

 

V. 

최근에 나는 원래 라디오색에서 매니저 일을 했던 스프린트의 직원에게서 새로운 폰을 샀다. 그는 내게 자신이 하루 종일, 혼자서 점심 식사 시간도 없이, 아침 9시에서 밤 9시까지 가게를 운영했던 때에 대해서 얘기해줬다. 문을 닫은 후, 그는 그 즉시 다른 가게로 가서 그들의 재고품 조사를 도우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밤새도록 그것을 도와줬고, 그 다음 곧장 다시 그의 가게로 돌아가 또 다른 12시간짜리 근무를 했다. 서른 여섯 시간을. 

 

VI. 

나는 라디오색, 가끔씩 악의와 헷갈릴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기계가, 좋은 사람들이 먼지 한 무더기와 플라스틱 이름표가 될 때까지 두들겨 패대는 것을 그저 쉽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인데 한동안, 최소한은, 라디오색이 그들의 이야기를 온라인에서 공유하려는 직원들의 입을 막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기업은 막대한 양의 초과 근무 수당을 지급하는 걸 실패했다고 (올바르게) 주장하는 집단 소송의 대상이었다. 직원들이 모이는 포럼, 라디오색구림은, 소송에 참여하기로 선택한 이들이 모이는 기관이었다. 

역사의 이런 시점에서는, 기업이 그들을 “비방했다”고 인터넷 포럼을 닫아버리는 게 상상하지 못할 일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라디오색이 하려고 했던 일이며, 나름대로 했던 일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이것이 두렵지 않은데, 일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라디오색이 이제 그거에 대해서 뭐든 해보기에는 거의 반쯤 죽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세상에나 감사해라. 

 

VII. 

그리고 내가 “세상에나 감사해라”라고 말하는 거에 있어, 나는 조만간 무직이 되어버릴, 지금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내 마음은 그들을 위해 무너져 내리고, 나는 그들이 - 나와, 스프린트 가게의 그 사람과, 그 시절의 내 친구들처럼 - 그렇게 끔찍할 정도로 처참한 곳을 찾아 나설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색이 일 초라도 전혀 누릴 일 없을 정도로, 대단하고, 굉장하게 자격 과잉인 사람일 것이다. 

몇몇은, 어, 그렇진 않았다. 몇 달 동안, 나는 내가 지금부터 크레이그라고 부를 이 남자와 일했던 적이 있다. 그는 연방 수사관이 들이닥쳐서 모조리 가져가기 전까지, 나라 바깥에서 마약을 기르는 걸로 많은 양의 돈을 벌던 오십대 아저씨였고, 그저 어딘가에 선 채로 내가 전혀 본 적 없는 TV쇼에 대한 농담이나 던지는 걸 더 선호했다. 매일, 근무가 반쯤 지나가면, 그는 자신이 “(자기) 약을 먹으러 갈 것”이라고 기쁘게 알려준 다음에, 그의 자동차에 앉은 다음 보통 이상으로 뿅 간 다음에 뿅 간 크레이그가 되었다. 

뿅 간 크레이그는 카시오 키보드의 음량을 최대치로까지 올려버린 다음에 그냥 키보드를 두들겨대곤 했다. 그는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고, 그냥 뿅 뿅 뿅 뿅 한 무더기뿐이었지만, 여러분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식으로의 좋은 시간을 보내긴 했다. 

 

VIII. 

뿅 간 크레이그는 우리가 언제나 디스플레이에 틀어놓아두는 말하는 사진 액자들을 다루는 것에 상당히 능력을 더 갖췄다: 사진 액자에서 버튼을 누르면, 그것은 미리 녹음된 메시지를 재생했다. 크레이그는 그걸 녹음하는 걸 사랑했고, 매일 새로운 메시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의 기본이 깔리게 된다: 친절한 할머님 한 분이 가게를 둘러보다가 그 사진 액자 중 하나로 건너오게 된다. 프레임 안에는 스톡 이미지가 있었는데, 미소가 귀 끝까지 걸린 소녀가 타이어 그네에 앉아있는 거였다. 

가게 건너편에서부터 나는 할머님을 보고, 오늘의 선언이 최소한 전체 이용가이길 빌고 있다. 그녀가 버튼을 누른다. 뿅 간 크레이그의 목소리, 딱 톰 웨이츠처럼 들리는 그것이, 울려 퍼져나간다. 

 

좆 같은 상품 좀 그만 만지작대고 존나 구매를 하라고! 

 

할머님은 웃음을 터뜨리고, 내 생각에 그녀는 어쩌면 사진 액자를 사는 것으로 끝을 볼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러신다면, 그게 바로 크레이그가 만들어냈던 유일한 판매 실적이 될지도 모르겠다. 

 

IX

한번은, 뿅 간 크레이그가 내게 휘청거리며 다가왔을 때 나는 고객을 위해 휴대폰을 작동시켜보는 중이었다. 그렇게 와서 그는 그냥 거기 서 있었다. 일 분이 지난 후, 그가 말했다, “배고프담, 마.” 뭔가 인용이라도 하는 거처럼 마냥, 나는 여전히 그게 뭐였는지 모르겠다. 그는 그걸 계속 반복할 뿐이었다. 

뿅 간 크레이그. 배고프담, 마.
나: 그래서 이건 39.99달러짜리 약정이고, 이 년 짜리 계약에 싸인을 하신다면, 문자 메시지 500개 또한 얻--
뿅 간 크레이그. 배고프담, 마.
고객: 저 분 괜찮으신 거예요?
나: 저기, 크레이그. 뒷방에서 몇 분 정도 쉬고 싶으세요?
뿅 간 크레이그. [걸어 나가며] 배고프담, 마. 

잘 지내시고 계셨으면 좋겠네요, 크레이그, 그리고 저기 바깥 어딘가에서 저녁거리를 찾으시기를도요. 

 

X. 

삼 년 반 동안 내게 정기적인 수입을 제공해준 고용인을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그리 편치 않은 어느 정도의 부분이 내 안에 있긴 하지만, 나와, 내가 함께 일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받았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쏟아부었다. 

내 친구 중 하나는 그 이후로 철거되었던 낡아빠진 몰의 라디오색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위층에는 식당들이 있었고, 한밤중에, 바닥이 배수관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다음 날 아침 그는 가게를 열고 그곳이 오수와 인분으로 뒤덮여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가 말하던 대로 얘기하자면, 모든 곳에 그것들이 오십 파운드(22kg)는 있었다고 한다. 

그 어떤 분별 있는 사업이라면, 당연히, 그 즉시 전화를 집어든 다음에 위험 물질 전문 팀을 고용할 것이다. 우리 구역 사무실은 내 친구에게 혼자서 그것을 다 치우라고 지시했다. 그가 거부했을 때, 그는 거의 일자리를 잃을 뻔했다. 

 

XI. 

라디오색은 새 직원들에게 그들의 판매 사원들이 일반적으로는 시간당 20달러씩을 번다고 주장할 것인데, 그것은 논란의 여지없이 완벽한 개소리다. 내가 알았던 바닥 단계 정도의 직원들 다수가 평균적으로 그 양의 반보다도 적게 받았다. 결과적으로, 총 노동인구는 그들이 낚였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이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깨달은 다음에, 그만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회전문이었다. 장기간 직원들은 종종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우리는 뭔가 더 나은 거를 찾았더라면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그만두는 광경을 꿈꿔왔을 것이다, 매니저의 책상에 이름표를 떨어뜨린 다음에, 쾅쾅대며 나가는 거. 나는 절대 그러지 못했는데, 내 매니저가 데스크탑 컴퓨터 중 하나에서 CD롬 드라이브를 훔쳤다는 혐의를 내게 씌웠을 때 가장 가까워지긴 했다. CD롬 드라이브가 들어갈 수 있을 빈 공간이 본체에 있기는 했지만, 그 어떤 것도 거기에 있던 적이 없었다. 

내 매니저, 신께서만 알고 있을 정도로 긴 시간동안 과업에, 고함을 듣고, 수면 부족으로 몽롱해지는 노동을 해온 이가, 갑작스럽게, 알고 보니, 그 컴퓨터에는 CD롬 드라이브가 있었다고 정해버렸다. 더 나아가, 그녀는, 지난 해 동안 그녀와 꼼짝없이 갇혀있었고 그녀를 위해 그렇게나 많이 함께 있어줬던 유일한 사람인 내가, 그걸 훔쳐간 사람이라고 정해버렸다. 내가 이것을 부정했을 때, 나는 고함소리를 들었으며, 그녀는 분실 방지 부서를 걸고/아니면 경찰을 부르라고 나를 협박했다. 

단숨에, 그녀는 다른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컴퓨터에 원래부터 그 드라이브가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전화를 집어 들었다. 땡.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걸었다: 아니. 그녀는 마침내 세 번째 매니저가 아니라고 했을 때에 누그러졌다. 나는 내게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녀에게 말을 했다. 그녀는 내게 쌀쌀맞게 아니, 나는 사과를 받지 않을 것이며, 말 나온 김에 그러고 보니까, 가게의 일정이 바뀌어서 내가 계획했던 휴가를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을 했다. 

 

XII. 

내 경력에 있어 그 시점 즈음에, 나는 최소한 바닥에 성난 채로 집어던질 수 있는 진짜배기 이름표라도 갖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내 첫 해 동안 이것을 달고 다녔다, 내 이름을 손으로 적은 종이 쪼가리를 테이프로 붙인 거. 그 사람들은 그냥 내게 하나를 주문해주지 않았다. 

한 번은, 가게에 방문하고 있는 동안, 내 구역 매니저가 내가 갖고 있지 않았던 이름표를 달고 있지 않았다고 나를 꾸짖었고, 나는 제대로 된 거, 무엇이든 가게에 돌아다니고 있는 거 하나를 달아야겠다고 주장했다. 나에게는 채드나 엘리자베스가 되는 선택지가 있었다. 나는 엘리자베스가 되기로 결정했고, 그러더니 그는 안 된다고 말해서, 나는 엘리자베스가 될 수 없었다. 

 

XIII. 

이 이름표에 대해 웃긴 게 있다면: 자석이었다는 점이다. 재미로, 우리는 서로의 옆을 지나가면서 각자의 셔츠에서 그걸 찰싹 뜯어내곤 했다. 

나는 내 보조 매니저에게 항상 그랬었다. 나는 그가 여분으로 갖고 있던 “보조 매니저” 이름표를 찾았는데, 나는 그걸 검은 전열 테이프로 바꾼 다음 주머니에 숨겨놓고 있었다. 나는 그의 이름표를 가슴팍으로부터 쳐낸 후, 주우려고 숙인 다음, 그에게 재빠른 손재주로 다른 거를 줬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그가 “똥멍청이놈”이라고 쓰인 이름표를 하루 종일 달고 다니게 된 것이다. 

 

XIV. 

나의 라디오색 경험 중에서 대다수는 경계 근무처럼 느껴졌다. 가게가 한 해 중 어느 때에 있든지에 따라, 나는 단 한 명도 문으로 들어오는 꼴을 보지 못한 채 넷에서 다섯 시간은 갈 수가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들을 나름대로 재미나게 해야만 했었다. 뭣 같은 이유 때문에, 회사에서는 우스울 정도로 많은 수의 리모컨 조종 PT 크루저를 주문했었다. 우리의 작은 가게에만 그것들이 말 그대로 그것들이 수 백 개씩은 있었다. 당연히, 아무도 그걸 사지 않았는데, PT 크루저들은 지루하고 멍청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친구 중 하나는 그거 몇 개를 몰 한가운데로 가지고 나간 다음에 즉흥적으로 파괴 더비를 개최했는데, 그것들 중 하나가 그만 움직일 때까지 그냥 서로를 향해 박아대는 거였다. 그것들은 적은 수의 군중을 불렀고, 가까운 가게의 직원들은 문가에 서서 그걸 바라보곤 했다. 언젠가 한 번은 심지어 거기에 돈을 걸었었다.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게. 라디오색이 허접한 회사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 역시, 여기서 완전히 결백하다는 것도 아니다. 

 

XV. 

저 모든 PT 크루저들을 주문했던 곳과 동일한 상품 외주 관리 업체는 온갖 판매 불가능한 잡것들을 주문했다, 그러니까 리모컨 조종 브럼 자동차들 같은 거. 브럼이 무엇인지 모르셔도 괜찮다. 미국에서는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영국의 어린이 카툰이니까.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그것들을 20개 정도 쌓아 진열하거나 브럼 자동차들이 이미 비좁은 가게 안에 있기를 요구받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들을 없애버리려고 혈안이 돼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것들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그것들을 맞닥뜨리고 “어, 브럼이 뭐예요?”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팔리지 않았다. 

이 짓이 한 달은 지나간 후, 영국에서 왔다고 추정되는 가족이 어느 날 가게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진열장을 보았고 눈이 일치단결하며 빛났다. 그리고 내가 신께 맹세컨대: 그들은 브럼 장난감에 둥글게 선 다음에 서로 손을 잡고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브럼 노래를 부르면서. 그것은 이 분짜리 노래였거나, 아니면 그 가족이 연달아서 불렀던 것일 테다. 

그건 내 삶 전체에서 겪었던 것 중에 가장 초현실적인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여전히, 그 사람들도 하나를 사진 않았다. 

 

XVI. 

라디오색은 큐켓이라고 불렸던 물건 또한 팔려고 했었는데, 내가 거기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던 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걸 무료로 나눠주려고 했음에도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큐켓은 잡지 광고에서 바코드를 읽어주는 적외선 스캐너였다. 

아이디어는 이랬다: 당신, 고객님은, 컴퓨터 옆에 앉아서 잡지를 읽는 거였다. 여러분이 맘에 드는 광고를 발견한 다음에, 여러분은 그것을 큐켓으로 스캔한 다음에 컴퓨터로 보내고, 그것이 여러분의 브라우저를 통해 직접적으로 광고인의 웹싸이트로 보내주는 거였다. 

이 기술은 그의 이름을 법적으로 J. 허턴 퓰리처로 바꿨던 남자가 개발했었다. 여러분이 읽어서는 안 될 아주 길고, 간신히 이해할 수 있는 인터뷰가 여기 있는데, 반절 정도는, 그가 대관절 무슨 말을 하고 자빠졌는지 나는 모르겠다. 라디오색은 이 양반에게 천만이고 백만이고 달러를 줬는데 왜냐면 그들은 고객들에게 있어서 좋은 시간이 거기에 앉아서, 모든 일을 한 다음, 스스로 광고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다다이즘식 투자가 있었더라면, 이게 바로 그런 거였다. 

[편집자주, 2020/1/30: 퓰리처씨는 SB네이션에게 “큐켓은 절대로 판매 가능한 품목이 아니었다”고 마하며 큐켓 장치는 적외선 스캐너이기보다는 “자동 키보드 기술 장치”였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지난 15년 동안 라디오색에서 나왔던 수많은 멍청하고, 멍청한 아이디어 중에서도 가장 멍청한 거였을 것이다. 내 생각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것은 완벽하게 이해 가능하다. 

이것은 1975년도에 완벽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지어진 소비자 기술 사업니다. 인터넷에 들어오게 되면서, 기술 회사로서, 바로 이것은, 그를 향해 공격적으로 움직이면서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로 예상될 것이다, 다만 그 누구도 인터넷을 아주 오랫동안 정말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만 빼면. 그래서 그들은 몇 차례 크게 나가떨어졌던 것이다. 그 다음 아이폰이 등장했으며 라디오색이 팔고 있던 물건들의 반절이 완벽하게 잉여가 되도록 만들어버렸다. 이 회사는 몇 십 년 전에 그랬던 것에서 뭔가 극단적으로 다른 것이 되었어야만 했다. 나는 그저 이 회사가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취객의 경로와 행위를 되돌아가는 것과 같다: 좋아, 바로 여기서 그가 경찰차를 긁었던 곳이군. 잠깐, 왜 그랬던 거지? 나도 몰라, 하지만 그 사람 바지가 여기 널브러져 있으니까 이건 그 양반이 발가벗고 도서관을 털려고 하기 전이었던 거겠네. 

 

XVII. 

라디오색에서 일하는 것 최악의 두 세계를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거다: 블루-칼라 소매업에서 받는 빈곤한 수준의 수입이 있었고, 화이트-칼라 환경의 기대치와, 정치적인 난센스와, 기업의 영혼 없음이 함께 따라왔었다. 

최소 한 달에 한 번씩, 종종 쉬는 날에, 우리는 모습을 보이기를 기대 받았다, 제대로 된 복장을 하고, 구역 사무실로 두 시간짜리 회의를 하러. 가끔씩 우리는 개인적으로 불려서 그들에게 충분치 않았던 판매량을 기록하는 사람들로 꾸짖음을 당했다. 나는 아직도 한 여성분이 모두의 앞에서 울어버린 후 부끄러움에 차 떠나버렸던 것을 기억한다. 

더불어 우리는 포트워스에 있는 기업 사무실의 비디오들을 보았다. 한 장면은 특히나 두드러졌다. 라디오색의 지역 간부 넷이 포커 테이블에 앉아있었고, 3분기에 그들 중 어느 지역이 가장 업무를 잘 할지를 “배팅”하고 있었다. 

중서부 간부: 우리 지역이 이번 분기에 판매 실적을 리드한다는 데에 걸지.
북동부 간부: 그거 있잖아? 우리 판매직원들은 문으로 걸어 들어오는 모든 고객들에게 다이렉TV와 스프린트를 제공해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네 꺼 콜은 하겠고... 레이즈도 하겠어. [테이블 중앙에 칩 무더기를 밀어 넣는다.]

(주석: 그거 스트링 벳이거든, 이 밥팅아.)

남서부 간부: 뭐, 우리 판매직원들은 H.O.T.를 A.A.A. 방식으로 팔아야만 한다는 걸 알거든! 나도 레이즈! 
북서부 간부: 우리 판매직원들 얘기를 한다면 말이야... [어마어마한 양의 칩을 밀어 넣는다] ...난 오오오오오올 인이야. 

우리는 원래 이것을 본 다음에 우리 지점 천 개짜리 지역에 자부심을 가지고, 나도 모르겠다, 간부들을 위해 보너스를 벌어야 하는? 동기부여를 받았어야 했을 것이다. 우리들, 한 달에 천 달러를 집에 가져가는 사람들, 우리의 마지막 남은 카키 신발에 구멍이 뚫린 채 출근하는 사람들, 자동차 수리비를 지불할 수가 없어 일하러 한 시간을 걸어서 출근하는 사람들, 지나나 주에 80시간동안 가게에 매니저 일을 했고 거기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최저시급보다 낮은 액수를 받은 사람들. 우리들, 우리의 유일한 쉬는 날을 내동댕이쳐서 여기에 앉아 저들이 벌기를 원하는 돈과 우리가 얼마나 쓸모없는지에 대해 듣는 사람들. 

내가 거기서 왜 그렇게나 오랫동안 일했는지 물어보는 게 정당할 것이다. 나는 그저 더 낫다고 생각되던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고, 그 순간에는 그게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다고 나 스스로를 설득시켰을 뿐이다. 

 

XVIII. 

라디오색에서 일하던 많은 때가 경계 근무를 서는 거 같다 얘기했다. 어느 한 주에는, 실제로 경계 근무를 했다: 완전히 망해버린 몰에 있던 라디오색이 한 주 안에 문을 닫을 계획이었고, 그곳의 모든 직원들은 벌써 도망쳐버려서, 거기를 며칠 동안 굴릴 수 있게 나를 보냈던 것이다.

첫 날에, 나는 가게를 12시간동안 열었고, 단 한 명도 걸어 들어오지 않았다. 둘째 날에, 한 사람이 시계 배터리를 사갔고, 그 주의 가게 총수입은 2.99달러로까지 치솟았다. 뒷방에서부터 책상 의자를 꺼내와, 가게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앉은 다음에, 진열용 TV의 선을 갈아서, 위성방송으로 맥가이버를 볼 때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리고 내가 최저시급보다 겨우 조금 더 만들고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하던 업무가 어느 건물에 가서, 불을 키고, 거기에 앉아, 내가 나만의 상사가 된 다음, 겁나게 많은 양의 맥가이버를 본 다음, 집에 가는 일이기도 했다. 맥가이버는 대단한 쇼였고 나는 그것보다 직장에서 더 나은 한 주를 보낼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30초 동안에, 누군가가 달려 들어와서 금전 출납기와 그 안의 300달러를 그대로 훔쳐갔다. 당황에 빠진 채, 나는 구역 사무실에 걸어 그 사실을 알려줬다. 

그들의 반응은, 더도 덜도 아니고, “에, 어쩌라고요.”였다. 썩을, 그냥 내가 가져갈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 놈의 맥가이버를 보는 걸로 스스로에게 300달러 임금을 줄 수가 있었다. 

그 도둑 또한 고객이라고 쳤을 때, 그 주에는 고객이 둘 왔었다. 

 

XIX. 

나. 라디오색에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존입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늙은 남자. 존, 이라고 말인가?
나. 넵.
늙은 남자. 그래, 농담 하나 있는데, 자네 들어볼 텐가?
나. 좋죠.
늙은 남자. 그래, 월드 와이드 웹이라고들 하잖아, 그렇지?
나. 그렇게 부르죠.
늙은 남자. 자, 그렇게 되면 빌 게이츠는 거미가 되는 걸까?
나. 그럴 거 같은데요!
늙은 남자. 그래, 이게 다라네. 방금 전에 그 농담이 생각났는데, “누가 이것을 재밌어할까?” 하고 생각을 했지. 그리고 라디오색의 자네들이 재밌어 할 듯싶었다 이 말이네.
나. 진짜 좋았어요.
늙은 남자. 몸조심들하고.

그 굉장한 할아버지는, 지금까지도, 나의 주된 코미디적인 영감이다. 신께서 그에게 축복을. 

* * *

추수감사절에, 라디오색의 사람들은, 아마도, 그들을 슬프게 하는 새로운 방법이 마침내 동나버린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라디오색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께 바라건대, 이것보다 훨씬 더 좋은 일을 찾으러갈 사람들이다. 

라디오색이 한 때는 대단했다고 자부한다. 나는 그들의 몇 십 년 된 카탈로그들을 본 다음에 그 다른 어떤 인상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갖고 싶어 죽겠는 거대한 호두나무 스피커들을 팔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그게 대체 뭔지 이해해보려 하고 있을 적에 컴퓨터를 팔았다. 내가 어린 아이었을 때, 라디오색에 가는 것은 장난감 가게에 가는 것보다도 훨씬 더 좋았다. 그곳은 키 큰 사람들을 위한 장난감 가게였다. 

내 키가 크고 거기에서 일을 하게 됐을 즈음, 라디오색은 이미 죽어가기 시작했다, 내 생각엔. 그곳은 색다르게 망해갔다, 장엄한 화려함이, 크고 작은 캔버스에 뿌려지고,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오직 그것이 계속 살아있게 해준 영혼들을 차고 돌아다니기 위해 중지를 하고. 그곳은 더 이상 차고 돌아다닐 수 있는 나를 갖고 있지 않으며, 곧 있으면, 아무도 갖고 있지 못할 것이다. 

젠장. 그러니까, 추수감사절이라니. 당신네들은 마지막으로 기회 한 번이라도 잡고 싶었던 거잖아, 그렇지? 

 


(...) 품질에 있어서, 조심스러운 계획과 거대한 구매를 통해 가능해졌
우리의 아마추어 친구들에게 적당한 서비스를 제공해주기 위해, 숙련된 직원이 (...)
남자들 - 모두 “햄”이었던 - 은 지속적으로 출근했으며, 그들은, 모든 순간에,
아마추어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기뻐할 것입니다. 동일한 남자들은 (...)
필요할 때 당신과 함께 편지를 뚫고 (...)
모든 아마추어들과 경험 있는 이들에게 따스한 초대가 확장될 것 (...)
- 사실, 문은 모든 순간에 모든 이들을 위해 열려있습니다 - 그러기에 저희는
여러분이 처리 가능한 (...) 이 있으면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주셔서 기쁩니다
저희와 함께, 완벽한 우애의 분위기 속에서 말입니다. 몇 해 전 저희는 (...)
“환영합니다”라는 문구를 입구 매트에 칠했고, 저희 지점은 그 이후로 (...)
(...)부터 회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놔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프링식 도어록은 언제나 열려 있답니다.

 여러분께 진심으로, 라디오색 법인이

2014년에 돌아보니 환장할 거 같은, RadioShackCatalogs.com에서 발견한 이미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