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존 보이스 관련 글

개인적인 위대함의 조건들

적어도 단일 영상에서 한 운동선수의 전반적인 커리어를 다룬 보이스의 영상은 두셋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꽤나 좋은][로니 스미스][차트 파티][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악의 야구 선수]가 그 영상들입니다. 한 해 정도의 차이를 두고 나왔던 이 영상들은 2015~16년 즈음 [꽤나 좋은][차트 파티]가 비슷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무엇이 다르고 또 결국에는 무엇을 공유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상들이라 생각을 해요. 그것은 말하자면, “개인적인 위대함 (individual greatness)”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개인적인 위대함이라는 표현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역사]에서도 그렇고 보이스가 야구에 대해 말을 할 때 주로 나옵니다. <지구력 풋볼에는 미래가 없다>에서도 얘기했듯이, 보이스가 야구를 보는 관점은 이미 성취될 것들이 최대한의 한계까지 성취된 이후, 천천히 완결된 상태에서 미래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거의 소진한 채 천천히 오래되어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기에 더불어 (풋볼에도 종종 붙이지만 + 결국 보이스의 본진이라고 할 것이 이 둘 같군요) 여기저기서 자기가 야구가 어떻게 이상한지를 보여줘 놓고 야구는 이상해요라고 둘러대는 것도 그렇고요. 야구는 이상하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위대함의 경우에 그것은 이런 식입니다. 한 선수가 얼마나 개인적인 위대함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갖고 있든 간에, 그것이 필연적으로 그가 속한 팀이나 그가 활동한 시기, 아니면 스포츠 전체에 필연적인 충격과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것은 물론 [시애틀 매리너스의 역사]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를 다루는 부분들에서 확실히 나오지만, 가끔은 농구/풋볼 등에서 일어나는 혁신들을 야구와 비교하는 것에서도 드러나곤 해요.

 

선수생활이 전반적으로 다뤄지는 과정에서, 어쩌면 로니 스미스와 제프 프랭코어를 묶어볼 수 있는 표현 또한 그런 개인적인 위대함으로 보입니다. 물론 여기서 위대함의 기준은 선수마다 아니면 이야기마다 굉장히 다르겠죠. 적어도, 이것은 단순히 위대한 기록과 통계, 수치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저 두 선수의 경우에는 더 그렇고요.

 

그렇지만 우선, 그를 위해서 [꽤나 좋은][차트 파티]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확실한 구분이 별로 안 되어있기는 하지만, [꽤나 좋은]시즌 1’이라고 칠 수 있는 1~4화까지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다뤄집니다. 구대성, 래리 월터스, 로니 스미스,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죠. 구대성, 월터스, (추측이긴 하지만) 페트로프의 경우에 이들은 단 하나의 꽤나 좋은일화만을 중심으로 다루는 성향이 강합니다. 십 몇 년에 처음으로 타석에 오른 구대성은 역대 최강의 투수에 맞서고, 월터스는 의자에 수많은 풍선을 묶은 후 하늘을 날아볼 꿈을 꾸며, 소련 장교였던 페트로프는 어느 당직 근무 날 적대 공격에 대한 비상경보를 받습니다. 그런 식으로요, 다만 [로니 스미스]의 경우, 이야기는 꽤나 좋은사건과 일화의 연속으로 구성되며, 자연스럽게 “1980년대에 세 번째로 가장 흥미로웠던 운동선수인 스미스의 선수 경력 전체를 포괄하죠.

 

흥미로운 건 영상의 3/4가 진행되는 동안 다뤄졌던 스미스에 대한 모든 일화들, “안짱다리, 필리 파나틱, 코카인 잔치, 병들, 월드 시리즈 우승, 살인 계획, 최고의 복귀 중 하나, 월드 시리즈 홈런 기록, 결국 그 이후 나오는 월드 시리즈에서의 실책 하나에 묻혀버리는 나름의 결과입니다. 확실한 기록의 측면에서도 아니면 개인의 성향과 그와 엮인 일화의 측면에서 빛났던 스미스의 개인적인 위대함은 그렇게 가려집니다. (여담으로 거기까지로 가는 길목에 보이스가 그 모든 일화를 언급하며 빠른 속도로 돌려져 재등장하는 영상의 지난 부분들은 [꽤나 좋은]의 포커 에피소드에서도 비슷하게 나오며 지난 이야기들을 받침으로 삼아 뒤집어버립니다.) 다만 그 실책의 순간은 영상 전체에서는 잠시간만 등장할 뿐이고, 보이스는 곧바로 스스로의 모습을 집어넣으며 (아마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분노와 고통이 반반 섞인 쌍욕을 뱉는 보이스의 영상은 이것뿐일 겁니다) 다시, [로니 스미스] 전체의 형상을 그리는 추락과 반등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죠. 그 덕에 자연스럽게 스미스는 이러저러한 비극적인 결함 그런 것들을 잔뜩 가지고 있는 인물처럼 그려집니다. 그런 게 꽤나 좋은거죠.

 

한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악의 야구 선수]에 등장하는 제프 프랭코어는 굴곡졌던 스미스의 선수생활과 비교하자면 그와 비슷한 개인적인 위대함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거의찾아볼 수 없지요. 미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루키이자 타고난 사람으로까지 평가받던 프랭코어가 어떻게 그 직후부터 얼마나 끔찍하게 별 볼일 없는 선수로 추락했는지는 여기서 일화보다는 그의 기록과 성적들을 표시한 도표로 제시돼요. 보이스가 이렇게 가져오는 차트들이 그렇듯이, 전체적인 추세에서 가장 멀리 홀로 떨어져있는, “다른 작은 점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하나의 이상하고 작은 점의 위치가 그 모든 이야기들을 대신 전해줍니다. 그러므로 보이스가 [차트 파티]에서 하는 작업은, 그 점들이 정확히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설명을 해주는 편에 더 가깝죠. 심지어 그것은 굳이 도표화될 일이 없는 대상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의 표지에 실렸던 모든 선수들의 성적을 기록하는 것에 프랭코어가 팬들과 주고받은 선물들의 가격에 대한 차트를 만드는 것까지도 포함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프 프랭코어의 화려한 루키 시절과 대비되는 초라한 경력에 등장하는 일화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들의 비극성을 심화시켜주는 도표의 수치들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역시 무보살 삼중살이죠. 수비수 혼자서 모든 주자들을 아웃시키거나 혹은 주자들이 그것들을 당하는 상황으로, MLB 역사상 15번뿐이라는 굉장하게 낮은 확률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프랭코어에게 일어난 일이죠. 보이스는 이 상황 자체를 다루기도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끔찍하게 운 나쁜 일이었는지를, MLB의 역사에서 플레이된 모든 경기들의 수를 그래프를 나름의 트래킹 샷으로 잡습니다. 허탈한 프랭코어의 표정과, 1/97925라는 확률과, 보이스의 독백-나레이션과, “타고난 사람이라는 표지들이 우수수 몰려 닥쳐오죠. 그런 식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악의 야구 선수]는 정반대편에 있는 프랭코어의 개인적인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내용 구성을 위해 [꽤나 좋은][차트 파티]는 형식을 조금 달리 합니다. [꽤나 좋은]에서는 보이스 본인이 종종 해설자나 편집자와 비슷한 위치에서 직접 등장하기도 하고, 옛날 글에서도 종종 쓰였던 단색의 이미지를 비롯해 신문 기사, 자료 영상들의 콜라주, 물론, 구글 어스를 통해 비춰지는 거리의 모습들이 주로 쓰입니다. 특히나 구글 어스로 비추는 거리 위에 텍스트 파일을 자막처럼 올리는 방식은 (프랭코어의 무보살 삼중살과 비슷하게) 화면을 주욱 내리며 스미스의 1989WAR을 비추는 장면 같은 곳에서 빛나죠. 한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악의 야구 선수]는 꽤나 많이 등장했던 편집 지점이나 다양하게 쓰인 온갖 영상과 이미지 대신에, 마찬가지로 구글 어스를 이용한 거대한 캔버스에 주욱 나열된 온갖 도표들을 한 방에 원 테이크에 가깝게 보여주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후에 보이스가 훨씬 더 깔끔하고, 통일된 형식으로 다듬게 될 그 모양새죠. 특히나, 영상이 끝날 때 뒤로 죽 카메라를 빼면서 여태까지 나왔던 모든 차트들을 한 번에 보여주며 이를 훑고 내려가는 엔딩은 (게다가, 지평선도 보이네요) 나중의 영상들에서 종종 보게 될 장면입니다.

 

이 에피소드가 올라왔을 즈음에는 아직까지 [차트 파티]는 막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꽤나 좋은][차트 파티]가 주기적으로 오가면서 서로 업로드되던 때기도 하죠. 그 즈음의 특징들도 보입니다. 이를테면, 맨 윗줄에 있는 챕터별 분류 같은 것은 이후 [꽤나 좋은][253 : 141]에서도 잠시 등장해요. 꽤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자주 보이지는 않더라고요. 한편, 바로 그런 덕에 [꽤나 좋은]에서 좀 더 나타났던 특징들 또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크롭해온 이미지들의 배열 등은 오프닝 장면이나, 물론 영상 전체의 프롤로그이자 에필로그로 기능하고 있는 화장실 사건이 그렇죠.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악의 야구 선수]의 요점이자 개인적인 위대함이 바로 그 화장실 사건에 있습니다. 프랭코어가 여전히 여기 있다는 점 말이죠. 역대 최고의 루키로 출발해 실망스러운 평범함과 끔찍한 불운, 거기에 딸려오는 정처 없는 커리어까지를 겪었음에도, 프랭코어는 영상이 나오던 때까지도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그와 동일한 때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선수들과 비교하면, 거의 홀로 남은 채로요.

 

조금 당연한 결말이긴 하지만, [로니 스미스][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악의 야구 선수]는 그런 의미에서 운동선수의, 사실 그런 선수뿐만이 아니더라도 그냥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게 있어 개인적인 위대함이 대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스포츠를 다루는만큼, 보이스는 그 개인적인 위대함의 기준을 전혀 다른 곳에 잡곤 하고요. 이것은 특출나거나 괴상한 경력과 일화들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집니다. 앞서 말한 구대성도 그렇고, 또 다른 영상들에서 다뤄질 베리 본즈, 리키 핸더슨, 그 수많은 , 시애틀 매리너스의 수호성인들, 랜덜 커닝엄, 콜린 캐퍼닉, 스테판 커리, 브랜던 가이어 등의 선수들이 다 그렇죠. 각자의 방식과 규모로, 가끔씩은 스포츠 역사 전체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가끔씩은 기묘하게 홀로 있는 점 하나 정도가 되며, 이들은 개인적인 위대함을 갖고 있는 선수가 됩니다. 스미스는 비극적인 결함으로 가득 찬 야구 선수로서, 프랭코어는 미스터리가 없는 영원한 공허로서 그렇게 되겠고요.

 

물론 그렇게 따지고 보면 스미스와 프랭코어를 굳이 개인적인 위대함만으로 묶을 이유는 없겠죠, 너도 나도 상관없이 다들 그럴 테니까요. 다만, 앞서 말했듯이, 저는 커리어 전체의 흥망성쇠와 크고 작은 일화를 각자의 방식으로 다뤘다는 측면에서 이들을 보고 싶습니다. 스미스가 꽤나 괜찮았던 80년대 초반을 보낸 다음 부침에 빠진 후, 놀라울 정도로 반등하며 돌아오며 계속해나가는 이야기와, 프랭코어가 타고난등장을 뒤로 하고 침체기에 빠졌지만 놀라울 정도로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으며 계속해나가는 이야기는, 그 나름의 영()성을 공유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경력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한쪽은 문제도 고생도 많았던 인물로, 다른 하나는 언제나 외따로 있던 심성 좋은 인물로 그려졌고, 그것은 그들의 기나긴 경력을 통과하며 개인적인 위대함을 이루는 요소가 되는 동시에, ‘꽤나 좋은이야기들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