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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보이스 관련 글

“적당한 계산과 예측 속에 사는 난”

(글의 제목은 향니의 노래 "시뮬레이션 걸"의 노랫말에서 따왔습니다.)

 

<존 보이스 관련 글> 항목에 제 이름으로 올라가는 이 시리즈에서는 [존 보이스 컬렉션]에 번역되어있는 보이스의 작품들을 느슨하게 묶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여기서는 처음으로 번역되어 올라온 글들인 [존의 농구 게임][존의 농사 시뮬레이터]뒤따른 후속편 다뤘습니다!

 

제가 미래 언젠가의 보이스에게 바라고 있는 게 있다면 꽤나 그럴싸한 비디오 게임, 정확히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나 만들어주는 거예요. 지금까지의 것들 중에서 그에 가장 가까운 것은 아마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오랜 감독이자 슈퍼볼 우승 6회 경험자인 빌 벨리칙에 대한 시뮬레이션 게임인 [빌 벨리칙 오프시즌 시뮬레이터]일 것 같네요. 그것은 사실 비디오 게임이나 시뮬레이터보다는 트와인(Twine)을 이용한 하이퍼링크 텍스트 어드벤처에 더 가깝긴 하지만요.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다룬 적은 별로 없지만, 보이스 본인은 비디오 게임을 꽤나 많이 즐기고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건 [17776]의 질의응답 시간에 (저도 정말 하고 싶지만 콘솔이 여전히 없어서 못하고 있는) <젤다의 전설 : 야생의 숨결>이 나름대로의 영감이 된 게 아닐까, 언급하던 것이나 [고독의 시대에서 싸우기]2주년과 함께 슈퍼컷 에디션이 공개되며 함께 이를 만들었던 펠릭스 비더만과의 대화에서 (이거는 저 또한 꽤나 정신 빠지게 했던) <시드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의 힘 빠지는 후반부 플레이를 언급한 류들이네요. 물론 이외에도 비디오 게임에 대한 보이스의 관심은 여기저기서 종종 등장하는 90년대 게임 콘솔들의 이름이나 그 즈음 나왔던 구린 스포츠 게임들 등이고요.

 

[존의 농구 게임][존의 농사 시뮬레이터], <게리 모드>를 이용해서 보이스가 스스로만의 농구 게임과 농사 시뮬레이터(라고 하기보다는 일종의 레이싱 게임)를 만들어보고자 시도한 다음에 실패하는 내용입니다. 상대적으론 조금 옛날에 나온 만큼, 짧은 길이 속에서 짤들을 이용해 뭐든 일어나는 일들을 적어보는 성향의 글이죠. 특히나 [존의 농사 시뮬레이터]에서는 당시에 종종 하던 트위터 팔로워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해지기도 해요. (특히나, 농부가 결국 농사 시뮬레이터 혹은 레이싱 게임에서 우승을 한 것도요.)

 

물리엔진 샌드박스로서 <게리 모드>(밸브사의 또 다른 유산인 [소스 필름메이커]와 함께 + 물론 그 유산이 이들만 있는 건 아니지만요)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중반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문화에 굉장한 영향을 줬다, 고 저는 생각하는 편입니다. 실제로 나름대로의 게임을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가장 재밌는 것은 게리 모드만의 비디오 게임 로직들이 온갖 방식으로 튕겨나가고 무너지고 하는 광경들을 난삽하게 섞어서 B급 로우폴리곤 3D 애니메이션 같은 꼴로 만드는 것들이었죠. 그 당시의 유튜브를 떠돌았던 그런 영상들이나 보이스가 <게리 모드>를 사용해 만든 시뮬레이터들이나 그런 재미의 면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존의 농구 게임>을 하면서 어떤 일이 생길지 전혀 모릅니다.”

 

<게리 모드>는 물론 농구나 농사를 위해 짜인 물리엔진이 아닙니다. 물론 능력자들은 어떻게든 하겠죠. 유튜브에 검색을 하니 2013년 영상이 하나 나왔고, 애초에 <게리 모드>를 하는 것부터 해서 덥스텝스러운 오프닝 음악이나 꽤나 낮은 품질의 페이스캠과 소리까지 굉장히 2013년스럽네요. 저 영상에는 농구에 맞춰 새로 애드온을 짰지만, 보이스는 기본적인 것만을 갖고 어떻게든 해봅니다. [하프라이프]의 중력총으로 물건들을 어딘가에 발사하는 편에 가깝죠. 농구선수처럼 움직이는 명령어로 짜인 디지털 시뮬레이션 인간들은 없으므로, 모두가 죽든가 죽이든가 할뿐이죠. 적어도 한 해 뒤의 <농사 시뮬레이터>에서는 애초에 농사를 자동차에 모이통을 달고 내달리기로 축소해버린 후 도착점에 도달하는 걸로 바꿨지만요.

 

다만 여기서 언급되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게리 모드>에서의 그것들도 그렇지만 이즈음에 활발히 연재되고 있던 [매든 부수기][NBA Y2K]에 마찬가지로 적용되긴 하죠. 왜냐하면 저 시리즈들이 사용하고 있는 <매든><NBA 2K> 시리즈는 정말로 스포츠 경기를 시뮬레이션해보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들이고, 그 안에 분명히 내재된 제한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루프홀을 만들어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거대한 샌드박스를 지향하고 있는 <게리 모드>가 보이스가 비디오 게임에 겨냥하는 것과 맞을 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게리 모드>, 아니면 <매든>이나 <NBA 2K>, 혹은 다른 시뮬레이션이나 오픈 월드, 샌드박스 식의 것이든, 비디오 게임의 세계는 그 규칙과 범위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정도가 실제 세계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또 다르다는 점이죠.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거대한 자동차부터 불붙은 타이어까지 소환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길 가던 사람과 그나마 정상적인 농구 한 판을 할 수는 없습니다. 보이스가 비디오 게임에 접근하는 방식이 그러한 것도 바로 게임들이 그런 확실한 규칙과 범위의 제한 속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바로 그러한 제한의 특성은 실제 게임’, 그러니까 스포츠 경기에서도 사뭇 비슷하게 적용될 것입니다.

 

보이스를 번역할 때마다 너무 아쉬운 것 중에 하나가 ‘game'이 비디오 게임도, 아니면 단순한 놀이도, 또한 운동 경기까지도 전부 다 포함하는 단어라는 점인데요, 이것은 그와 상응하며 따라오는 ‘play'에 마찬가지로 많은 의미가 있는 것과 더불어서 한국어에서는 어쩔 수 없이 게임이 꽤나 확실하게 비디오 게임을 지시하는 성질 때문에 때마다 다르게 쓸 수밖에 없게 됩니다. ‘게임의 확실한 제한 안에서 최대한 무언가를 이끌어 내보려고 하거나, 혹은 그 제한을 최대한 역이용해보려는 것은 비디오 게임은 물론 놀이와 스포츠 경기에도 겹쳐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일부로 실제 세계에 더더욱 많은 규칙과 제한, 범위를 추가해서 무언가 재미난 것을 해보려는 것일 테고, 그것 또한 말하자면, 나름대로의 시뮬레이션’, 모의재현이 될 것입니다. 다만 거기에 맞춰 필요한 것은, 원하는 재미를 위해 세계의 규칙과 제한과 범위를 어디까지 어떻게 더하고 빼볼 지일 테고, 말했듯, <게리 모드>는 적어도 보이스를 위한 제한된 샌드박스가 아닌 듯싶네요. 어쩌면 보이스에게 어울리는 '게임'이 어떤 것인지 찾을지는 약간 빗나가는 생각 같기도 합니다. 그런 게임이 있더라도 보이스는 아마 갖고 놀기 좋은 모습으로 기괴하게 뒤틀어진 모드를 깔 거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