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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보이스 관련 글

“세상의 끝이 찾아오고 있다고 느끼세요?”

(제목은 갓스피드유! 블랙 엠퍼러의 트랙: “프로비던스의 가사에서 따왔습니다.)

 

[매든 부수기]2013년과 14, 두 해 동안 NFL의 정규 리그 일정에 따라서 연재되었고, 자연스럽게 그 피날레는 슈퍼볼과 함께 올라왔습니다. 물론 저는 풋볼과 야구 얘기를 하는 미국인의 글들을 번역하는 주제에 아직까지도 풋볼과 야구가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실 애초에 스포츠자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뭐 어쩔 수가 없지요. (바로 그런 이유로 [컬렉션]에서는 풋볼 관련 정보들을 검토/감수해주실 수 있는 분들을 찾고 있기도 합니다. 공지사항을 보시고 연락해주세요.)

 

영국 본토에서 축구만큼 널리 퍼지지 못했던 럭비가 미국으로 건너와 변형되며 나라 전체와 단단히 뒤섞여있는 건 특히나 슈퍼볼을 보면 압도되는 듯이 느껴지곤 해요. 한국에서는 죽은 자들을 위한 음식을 차리며 서로와 치고받기 위해 전 국민이 꽤나 비좁은 땅에서 우르르 이동해 각자의 꼴로 옹기종기 모이곤 하는 명절이 껴 있는 주에, 미국에서는 십 수 명 되는 국보급 스탯을 가진 남정네들이 거대한 아몬드처럼 생긴 공을 던져대고 받아대고 달려들고 처박히며 종종 꽤나 위대한 장면들을 만들고 그 사이에 전국구급 대중음악 스타가 나와 경기장의 스타디움 삼아 길어봤자 반시간도 안 되는 무대를 꾸미고 그 사이사이 무수하게 끼고 끼고 끼는 광고들을 보기 위해 나름대로 비스무리한 일이 일어나는 게 꽤 묘하게 느껴집니다. 덤으로 로마 숫자로 L이 정확히 얼마인지도 알 수 있죠.

 

미국 시각으로 27일 저녁에 진행되었던 슈퍼볼 LV는 최소한 40% 이상의 시청률을 찍을 것입니다. 이번 슈퍼볼에서 MVP를 석권한 톰 브레이디는 NFL 리그 내의 그 어떤 팀들보다도 더 많은 슈퍼볼 우승을 기록하게 됐으며, 이것이 쌓이는 과정동안 연도의 십의 자리가 세 번째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브레이디가 뛰고 있는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는 LV번 동안 열린 슈퍼볼에서 최초로 홈구장에서 경기를 뛰었으며, 압도적으로 상대팀인 캔자스시티 치프스를 뭉개버렸다고 합니다. 저는 미국 시각으로 경기가 막 끝났을 때쯤에 슬슬 일어나 유튜브로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다가, 더 위켄드가 네온 싸인 빛 펩시 로고와 함께 태진아가 입을 것 같은 빨간 반짝이 자켓을 입은 수많은 복제인간 댄서들 사이에서 과하게 휘청거리고 또 과하게 카메라에 들이대며 노래하는 무대를 보았습니다. 환상적인 엔터테인먼트였죠. 뭐 여하튼 축제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실제로도 그럴 거 같고요.

 

작년 [폐점 시간 이후 (After Hours)]와 리드 싱글 눈 멀 정도의 빛 (Blinding Lights)”으로 2020년의 영미권 팝 시장을 마찬가지로 석권했던 알앤비 가수이자 명실상부한 팝스타 더 위켄드는 슈퍼볼 하프타임 무대 사상 최초의 캐나다인 헤드라이너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에이블 테스페이 NFL 연대기이기도 할 거예요. 이것은 당연하게도 [팀 티보 CFL 연대기]의 홍보 문구이기도 합니다. 마침 거기서 티보가 뛰었던 구단도 토론토 아르고너츠입니다. 2장에서는 더 위켄드와 막역한 사이였기도 한, 또 다른 2010년대 영미권 팝 시장의 대표자인 드레이크 이 나오기도 하죠. 둘이 함께 네온 빛과 온갖 커머셜들, 환호성 지르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무대를 꾸몄다면 볼만했을 것입니다. 다만 보이스가 [매든 부수기]에서 부숴보려는 슈퍼볼의 하프타임 무대에 나오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또 다른 음악인들은 어쩌면 슈퍼볼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팀일지도 모르겠네요.

 

두 해 간의 [매든 부수기] 피날레의 영상에 깔리는 음악과 그 상징적인 제목을 장식하는 이 밴드는 몬트리올 출신의 포스트 록 밴드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Godspeed You! Black Emperor)입니다. 이 때는 아직까지 보이스가 저작권 라이센스 문제에 걸리지 않도록 거기서 자유로운 라이브러리 뮤직들만 사용하지 않고, 워커 브라더스(The Walker Brothers)부터 로드(Lorde)까지 대중음악사 내의 이러저러한 곡들을 적절하게 사용했던 때였어요. [매든 부수기]에서는 특히나 그 시뮬레이션의 결과물을 포착하는 영상에서 감정을 고조하기 위해 그에 맞게 주로 관현악을 도입하고 반복을 통해 긴장감을 천천히 불러일으키는 작법의 포스트 록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GY!BE의 음악 중 어느 경우들도 물론 바로 그러한 영역에 들어갈 것입니다. 다만, 보이스가 [매든 부수기]의 두 슈퍼볼 특집에서 사용한 음악은, 이를테면 스톰 (Storm)”의 첫부분처럼 아름답게 벅차오르는 구간이 아니라, 음울한 관현악과 전기 기타가 내뿜는 웅웅거리는 드론을 깔며 어두운 목소리의 나레이션이 깔리는, “죽은 깃발 블루스 (The Dead Flag Blues)”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조금 나중에 하고요.

 

[매든 부수기]의 기본적인 설정은 간단합니다. 특정한 컨셉에 따라서, 보이스가 유명 풋볼 시뮬레이션 비디오 게임인 [매든]의 수치들을 조정해서 선수()을 만들고 경기()을 조직합니다. 그리고 이 비디오 게임 세계 속에서 국보급 스탯을 가지거나 아니면 가지지 않은 남정네들이 거대한 아몬드처럼 생긴 공을 던져대고 받아대고 달려들고 처박히는 꼴을 지켜보며, 거기서 종종 꽤나 위대한 장면들을 잡아내고 설명하는 거죠. 하지만 보이스는 풋볼이라는 이 스포츠에 뭔가 일반적인 미국인 풋볼 팬을 생각할 때의 열광보다는 강한 애증을 가진 이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매든 부수기]의 첫 슈퍼볼 에피소드에서는 제가 애초에 NFL에 갖고 있는 가장 큰 궁금점에 대해서 말하고 시작하죠. 그러니까, 왜 결승 중에 결승전을 하필 겨울에 치르는 걸까요? “모든 슈퍼볼 경기들은 남동부나, 남서부나, 지붕 아래에서 치러졌습니다. 올해에는, 쓰라리게 추운 날씨 패턴들이 남극에서부터 트럭 짐칸의 건초더미들처럼 쏟아져 나오고, 올해는 또 바로 브롱코스와 시호크스가 뉴저지에서 슈퍼볼을 뛰어보려 해보는 해이기도 하죠.”

 

미국 대중문화에 있어서 가장 전국적이고 집단적인, 그러므로 가장 거대한 규모로 벌여지는 볼거리이자, 그에 맞춰서 수많은 상품과 광고와 또 다른 대중문화의 일부들이 함께 갖춰진 종합 엔터테인먼트로써 슈퍼볼에 대해, 보이스는 이어 여기까지 내려오는 동안 슈퍼볼 경기들은 갈수록 점차 진부한 경험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라고 평가합니다. 사실 그것은 제가 슈퍼볼 하프타임 무대가 아니라 본 경기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기도 한데, 물론 제가 아직까지도 풋볼에서 열광해야 할, 즐거움이나 짜릿함을 느껴야할 규칙이나 전술전략, 각 팀과 선수를 거의 모르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요. 보이스가 제시하는 해답은, 이제는 모든 팀들이 꽤나 강력해져서 사라져버린, 서로가 서로를 털고 터는 지저분한 광경을 재연하는 것입니다. [꽤나 좋은]의 가장 묵시록적인 에피소드인 [222 : 0]이 여기서 언급됩니다. [매든 부수기]는 그를 위해 슈퍼볼을 부술 거고요.

 

GY!BE는 다른 포스트록 밴드에 비하면 일종의 느슨한 정치적 공동체이자 그들의 좌파적인 아이디어들을 음악의 형태로 구현하는 집단에 가까운 편입니다. 10년 동안의 휴지기를 사이에 두고 이를 관통하는 것은 좀 더 개념적인 측면의 펑크에 가까울 정도로의 분노가 사납고 공격적인 리프의 악기 소리들로 솟아오르는 것이나 가장 짙게 어두컴컴한 소리에 조금 역설적으로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인 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게 이어지는 드론일 거예요. 다만 GY!BE가 그 당시 이전까지의 실험들을 안정된 문법으로 정립하고 있던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포스트록에 있어서 주목받을 수 있던 계기가 되었던 초창기 음반들에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말하는 소리, 그러니까 스포큰 워드(spoken word)'가 들어가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죽은 깃발 블루스도 그렇죠. 이 트랙이 실린 음반 [F# A# ]는 음반의 첫 구절에 나오는 두 개의 코드 옆에 무한대 기호를 배치합니다. 시종일관 분위기는 종말적이거나 묵시론적이라고 비유되곤 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매든 부수기]에도 깔리는 구절들이 세상의 종말을 묘사하고 있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다른 이유들 또한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보이스는 [매든 부수기]의 피날레에서 시뮬레이션 장난감으로서의 [매든]을 완전히 쥐어 짜내보려고 합니다. 두 차례의 피날레는 궁극적으로 비디오 게임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약하고 보잘 것 없는, 평균 남성의 신체적 능력에도 훨씬 못 미칠 선수들과, 그에 비해 정말 근육질 반신반인들이 나오는 신화나 그 신화의 역할을 대체하는 다른 무언가에 나올법할 (아마 [매든 부수기]도 신화를 대체할 수는 있겠죠) 선수들을 맞부딪힙니다. 단지 그뿐이에요. 목표는 앞서 나온, 그것이 정말로 일어났던 1916년도의 경기의 222점보다 훨씬 더 높은 점수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매든 부수기] 피날레의 가장 겉 표면에는 우선 이를 위해 보이스가 세세하게 잡아챈 온갖 신체적인 충돌을 통한 개그 짤들이 넓게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게 본문을 꽉 채우기도 하고요. 이것은 이 에피소드를 위해 보이스의 독자들이 기부 증빙용 영수증과 함께 응모한 똥방구 별명들과 말초적 웃김과 쾌락이라는 궤를 함께 합니다. 가끔은 겹을 하나 더 쌓아서 말 그대로 보이스의 어머니가 응모한 엄마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선수가 때려눕혀지는 짤과 함께 보이스가 어머니에 대해 갖고 있던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말하는 것으로도 이어지고요.

 

이 비디오 게임 시뮬레이션 슬랩스틱은 또한 바로 비디오 게임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에 나올 수밖에 없는 슬랩스틱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러한 멍텅구리 약골 선수들과 천재적인 덩치 선수들을 현실에 가져다놓았을 때에도 비슷한 꼴이 나타나기야 하겠지만, 세 쌍의 선수들이 동시에 완전히 똑같은 장면으로 충돌해 넘어지거나 머리가 필드에 클립되어 박혀버리거나 하는 일은 없겠죠. 글 마지막에 있는 크레딧 영상에 등장하는 하이라이트 중의 하이라이트만을 모인 몸개그들 또한 그렇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비디오 게임으로 구현된 비디오 게임 세계에서만 즐길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 점이 아마도 슬랩스틱의 저변에서 이를 조금 더 웃기게 해주는 요소일 거예요. 비디오 게임, 그 중에서도 초대형 엔터테인먼트이자 문화적 이벤트로써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AAA 규모 게임들은 최대한 현실 세계를 따라보려고 하지만, 절대로 그것과 완전히 대응될 수 없으며, 사실 AAA 비디오 게임들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미난 가능성들이 그러한 완전한 오류와 전적인 의도 양극단의 틈새 속에서 빠져나온다 생각하는 입장에서, [매든 부수기]는 초대형 스포츠 게임을 최대한 오남용하는 것으로 마찬가지의 재미들을 갖다 줍니다. 아마도 두 번째 [매든 부수기] 슈퍼볼의 오프닝 영상에 느려진 채 등장하는, [매든 NFL 15]의 광고의 한 장면이 이를 설명하기에 가장 잘 어울릴 거 같네요. 파티 중에 풋볼 게임을 하다 데이브 프랭코에게 뭉개져버린 케빈 하트가 찐으로 붙자는 거냐고 따집니다. 데이브 프랭코는 눈을 내리깔고 씩 웃기만 하고, 누군가가 와서 프랭코에게 집에 불이 났다 말하죠. 프랭코는 답합니다: “타게 둬.” 그리고 그것이 타게 둡니다.

 

이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일종의 과 비슷할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NFL의 모든 일정을 끝내는 것과 겹쳐지는 [매든 부수기]의 끝이죠. 더불어서 [매든 부수기]라는 기본적인 전제 하에서 끌어낼 수 있을 최대한의 설정에 있어서도 끝일 겁니다. ‘가장 강한 팀 대 가장 약한 팀은 가장 기초적이고 그만큼 쓸데없는 VS 놀이이기는 하지만, 이 이외에 직관적으로 박히는 아이디어가 없는 편이죠. 가장 강한 팀끼리의 대결과 가장 약한 팀끼리의 대결? 그것은 이 다음 해의 [매든 부수기] 피날레가 제공해줍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매든 부수기] 속에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풋볼 경기 자체의 끝이기도 하죠. 거기서 할 수 있는 한 최대치의 점수를 내겠다는 보이스의 목표도, 가장 시뮬레이션 슬랩스틱이 일어나기 최적의 환경에서 잡아낼 수 있는 온갖 웃긴 짤들도, 마찬가지로 결국 여기까지가 [매든 부수기]의 끝이자 끄트머리, 종료 지점이자 한계 지점이라는 걸 더불어 알려줍니다.

 

음반 단위 안에서 GY!BE의 음악은 크고 작은 규모 안에서 무브먼트에 나오는 몇몇 구간들에서 음반 전체의 흐름까지 다인원에 맞춰 구성된 악기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떠한 음량과 속도, 밀도 등을 조절하는 것을 통해 대비하는 것으로 주로 특유의 무겁게 종말적인 동시에 극적으로 들끓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그를 통해 효과적으로 어떠한 감정적인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록의 어법을 구성하는 악기들을 포함한 관현악단처럼 격하게 고조되는 부분은 착 가라앉은 다음 조용하게 깔리는 소음들 위로 채집된 소리들이 깔리는 부분과 종종 맞닿아있으며, GY!BE의 음반들은 이런 특유의 호흡을 따라가며 어떠한 사운드적 풍경을 만듭니다. 그것은 최고조로 끌어올릴 때에는 앞서 말한 음량, 속도, 밀도 등의 특성을 최대한으로까지 올려버리는 압도적인 구간들이 제시하는, 각자의 뒷면에 붙어있는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묵시적인 감흥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느껴져 왔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런 편이네요. [F# A# ][뉴 제로 카나다를 위한 느린 소요 (Slow Riot for New Zerø Kanada)]와 함께, 그 중에서도 꽤나 어두운 편입니다. 복귀 이후의 음반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끔은 지루할 정도로 길게 늘여지는 드론 구간과 이전보다도 더 날이 선 채 굉음을 쌓는 연주 구간 사이의 대비도 그렇게 확연히 드러나지 않고, 이 이후에 활동 중지 전까지 냈던 음반처럼 더 밝고 희망차거나 더 강한 분노를 드러내지도 않아요. 밴드의 중심이기 도한 기타리스트인 에프림 메눅(Efrim Menuk)이 읊는 시와 같은 나레이션은 약간 전형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의 도입부에 어울릴 거 같은 정경, 죽어갈 때까지 피를 천천히 흘리고 있는 기계의 꼴을 묘사하죠.

 

그리고 바로 그 죽어갈 때까지 피 흘리는 기계가, [매든 부수기]의 매든, 아니면 그 매든을 구동시키는 보이스의 엑스박스일 것입니다. [매든 부수기]의 전제이자 배경으로만 깔려있었던 비디오 게임의 시뮬레이션이, 보이스나 독자들에게 흥미롭거나 우스운 광경을 제공해주는 기능만을 수행하는 거에 지쳐, 직접적인 반격을 꾀합니다. 물론 이건 [매든 부수기]의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종종 나타났던 장면입니다. 보이스 또한 이를 알고 있죠: “여러분이 [매든 부수기]에 새로 오셨다면, 뭐 하나를 설명해야 하겠군요: 이 게임은 저를 증오합니다. <매든>은 제가 집어넣었던 그 모든 것들을 좋아해주지 않고요, 기계가 감정을 과장할 수 있다면, 바로 이게 그렇습니다. 이것은 절박하고, 화가 나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매든 부수기]의 밑바닥에는 단순무식한 재미를 할 수 있는 한 가장 끝까지 끌어내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며 일어나는 충돌, 기계의 시선을 보자면 게이머가 그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지옥도를 최대한 몰아내기 위한 투쟁이 깔려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보면 뭔가 더 의미 있고 중요해지기보다는 기이하고 무서운 만큼 웃기기도 한 상황이 만들어지지만요.

 

GY!BE의 음악으로 치자면 분노와 절망과 투쟁과 충돌로 들끓는 구간과 닮아있는, 비디오 게임으로 뽑아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대결에서 뽑혀져 나온 여러 시뮬레이션 슬랩스틱 짤들이 나열된 부분들이 끝난 이후, 두 편의 피날레는 하다못해 지친 [매든] 스스로가 [매든 부수기]의 배경이자 전제가 되는 것을 포기해버리거나, 여하튼 이 모든 것들이 순순히 일어나도록 두지 않는 순간을 그 다음이자 끝에 배치합니다. 첫 번째 피날레에서는, 2진법인가 4진법인가 16진법인가 64진법인가 여하튼 2의 제곱을 따라가는 컴퓨터의 최대 한계치인 255점을 뚫고 점수가 뻗어나가자, 비디오 게임 혹은 콘솔 자체가 꺼져있었던 페널티를 보이스에게 들이밀며, 끝없는 지옥의 슈퍼볼 속에서 충돌하고 있던 모든 선수들을 필드에서 없애버리고, “브롱코스-, 시호크스-반짜리 태아만을 NFL 로고 위에 남깁니다: “이것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거나 제가 하고 있는 것을 인정해준 존재의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사임의, 슬픔의, 착란의 표현이었습니다.”라고 보이스는 의미화하죠.

 

한편, 두 번째 피날레의 두 번째 경기, 모든 스탯들이 최대치를 찍은 두 개의 팀이 겨루던 도중, 비디오 게임 내 모든 선수들이 갑자기 멈추고, 영원히 그럴 수 있다는 듯이 서있기만 했습니다. 이에 대해선 보이스는 이렇게 말하죠: “저는 선수들의 주의력 등급을 99로까지 설정한 결과라 인식하기로 골랐습니다. 그들의 집중력이 풋볼 너머로까지 확장된 것이죠. 그들은 지각력을 성취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플라스틱 상자에서 배양되고 있는, 자그마한 인공 지능이라는 것을 알아요. 그들은 무엇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고, 이제 그게 나쁘다는 걸 알고 있죠.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시호크스가 이해 못했던 것을 이해합니다. 이것은 비폭력적 저항 행위이에요.” 그리고 마지막 경기, 그 전 해의 피날레를 재현하기 위해 다시금 싸움붙인 이론적인 최약체와 이론적인 최강체 사이의 경기는, 시각적 충격조차 남기지 않고, 그냥 멎습니다: “<매든>은 죽고 싶어 했습니다. 저희에게 쇼를 보여주거나 아기 악마를 낳고 싶어 하지도 않아했어요. 그냥 숲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가 홀로 죽고 싶어 했죠.”

 

저는 결국 [매든 부수기]가 보이스의 다른 글들이 그렇듯이 특정한 스포츠(혹은 그것의 시뮬레이션)을 입구나 출구로 든 다음 통로에서는 전혀 다른 더 깊거나, 깊지 않더라도 훨씬 다른 길로 보내주는 것에 충실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 경우에 그것은, 비디오 게임이라는, 현실 세계와 비슷해보이지만 전혀 다른 규칙을 따르고 있는 세계의 한계에 기어이 닿아보고 끝장을 보기 위한 보이스의 악마 같은 탐구력과 그를 위해 산 채로 헤집어져 글리치로 가득 찬, 혼란스러운 대재앙-풍경이 된 비디오 게임 자체의 대결이죠. [매든 부수기]의 슈퍼볼 경기들은 그 자체로 정말로 모든 것의 끝장을 보고 또 끝장을 내는 경기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러한 보이스와 비디오 게임 [매든] 사이에 일어나는 끝장 경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두 판 모두, 비디오 게임은 보이스에게 합당한 결말을 주지 않고, 아예 모든 걸 스스로 끝내보는 편을 택하죠. [매든]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자폭 버튼을 누르는 것이고, 자폭 버튼은 탈출 버튼과도 동일합니다. 영원히 이 없는 채 이어질 경기들 대신에, 정말로 을 보는 것이죠. 비디오 게임에게 있어서는 슈퍼볼의 을 상상하고 구현하는 것보다, 그 스스로의 시스템 자체가 끝나는 걸 상상하고 실제로 구현하는 게 더 합당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매든]은 실제로도 그렇게 했고요. 이것은 비디오 게임이 그 스스로를 절망으로 몰아가는 통제자에게 대항해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도 합니다.

 

물론 보이스 또한 그것을 아마 알고 있었으니, 스스로의 패배를 선언하고, 최종 점수에 대한 합의를 보며 기계가 마침내 죽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매든 부수기] 자체의 피날레에 어느 정도 가까운 두 번째 슈퍼볼의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보이스 자신의 섭섭한 바람을 실현이라도 해보기 위해 최약체 팀이 햇빛 속으로갈 수 있는 순간을 마련해주고자 조금 더 밝고 벅차오르는 비치 하우스(Beach House)의 트랙을 깔며 희망적인 결말을 마련하는 듯하지만, 적어도 제게는 장장 두 번의 정규 시즌 일정을 거치며 지옥에 살고 있던 [매든]이 풋볼 게임으로써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투쟁과 저항으로 적어도 을 얻은 것처럼 느껴지네요. 그런 의미에서 [매든 부수기]의 슈퍼볼 하프타임 무대에는 현실 세계의 슈퍼볼 하프타임 무대와 가장 어울리지 않을 밴드를 가져올 것입니다. 현실 세계에서 보자면, 끝없는 NFL 리그와 슈퍼볼 경기를 이끌어가는 것 속에서 어떠한 게임 시스템전체가 비폭력적인 평화 시위나 돌연한 악마의 씨앗을 내뱉는 것으로 저항을 할 순 없으니까요. 그 점에 있어서, 보이스가 두 번째 [매든 부수기] 슈퍼볼을 NFL의 죄악들과 함께 여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매든 부수기]와 대응되는 장면들을 보여주기 위해서이고, 그것은 앞서 말했던 [매든 부수기]의 첫 슈퍼볼에서 점차로 재미와 흥미가 없어지는 슈퍼볼 경기들과도 어느 정도 겹칩니다. [매든]의 비디오 게임 세계는 비디오 게임 세계이기에 이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걸, 모든 걸 끝없는 절망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걸 뒤틀린 글리치를 통해 보여줍니다. 보이스가 여기서 열거하는 NFL의 죄악들은, 아마도 그러한 뒤틀린 글리치들의 현실 세계 대응물일 것입니다. ([꽤나 좋은][차트 파티]를 보셨다면 아마 랜달 커닝엄과 콜린 캐퍼닉을 떠올리셔도 좋을 거 같네요. 그들은 아마 글리치의 반대쪽, 더 밝은 햇살 쪽 면이겠죠.)

 

“NFL의 로고에는 여덟 개의 별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사람들이 겪은 장기간의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트라우마와, 그 트라우마에 대해 거짓말하려는 열의와, 그 사람들이 응당 받아야할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한 완구한 거부와, 여성에 대한 의심할 여지없는 경멸과, 인종차별적 속어에 대한 당당한 방어와, 비영리로 위장한 영리라는 기이한 재정적 지상낙원과, 로저가 물가에 더 많은 콘크리트를 부어넣기 위한 세금 값이 필요해서 이학년 학급을 맡은 교사가 자기 돈으로 충당하는 $168.57의 물품 값과, 아마도 댈러스 카우보이스를 상징할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를 상표 등록하기 위한 철면피와 기관 모두를 소유하고 있는 희귀한 윤리적 대재앙이죠.”

 

가장 미국적인 대규모 엔터테인먼트에 있어서 금자탑과도 같은 슈퍼볼은 무수한 볼거리들 속에서 튀어나오는 온갖 위대함과 지루함을 모두 담고 있고, 그들은 서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더불어 그러한 문화적 이벤트로써 슈퍼볼에는 전례 없는 상업주의가, 이 세상에서 가장 로열티가 비싼 광고들로 완전 무장한 채, 가끔은 본 경기보다도 시청률을 더 끌어올리는 대중음악 산업의 기수들을 출전시키며, 한쪽에서는 보랏빛 비를 맞으며 기타를 치는 프린스로, 다른 한쪽에서는 [스펀지 밥]의 제작자 스티븐 힐렌버그(Stephen Hillenburg)의 추모를 통한 달콤한 승리 (Sweet Victory)”를 실망으로 뒤바꿔내는 것으로 현현합니다. 각자가 각자의 세계 속에서 엔터테인먼트의 끝장을 보려할 때, 현실의 슈퍼볼과 [매든 부수기]의 슈퍼볼은 그렇게 튕겨나가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현실 세계에서의 NFL시뮬레이션 기능을 사용해 끝장을 볼 때까지 게임을 가속될 수가 없죠. 현실 세계에서 이 시뮬레이션을 통한 끝장나는 가속은 보이스가 지칭하는 NFL의 별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커미셔너부터 이 거대한 문화적 이벤트에 열광하는 시청자들(물론 직간접적으로 보이스도 그렇고 저 또한 그럴 거고요)까지 모두가 의도적으로 또는 비의도적으로 합심해서, 직간접적으로 행하는 일입니다. 그 안에는 절망과 희망, 착취와 저항, 위대함과 지루함, 화려함과 비참함, 끝없는 결말과 결말 없는 끝 모두가 담겨있습니다.

 

사실 뭐, 보이스가 두 번째 [매든 부수기] 피날레에도 자조적으로 썼듯, 이런 얘기들은 모두 멍청한 몸 개그 짤로 가득 찬 글을 다루기에는 너무 더럽게도 젠체하는 방법입니다. 애초에 제가 슈퍼볼을 속속들이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제가 말한 것들도 어디의 어떤 엔터테인먼트에나 적절하게 퉁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이건 단순히 일종의 자족적인 홍보용 글일 뿐이고요. [매든 부수기]는 사실 정말로 매든을 완벽히 부순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망가뜨리기 전에 매든 자체가 이 모든 경기와 게임, ‘플레이 (play)'에서 스스로를 끊어버리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매든 부수기]의 피날레들은 희망적이라 느낄 수 있지만, 보이스는 이 완벽하게 절망적인 종말의 아이디어를 [NBA Y2K] 시리즈의 피날레와 더불어, 아예 그러한 종말론적인 비디오 게임 차원[펌블 디멘션 (Fumble Dimension)]에서 이어갑니다. [존 보이스 컬렉션]에서는 더더욱 끝의 끝장의 끄트머리까지 밀고 간 스포츠 게임 지옥을 전해드리겠다는 걸 약속드립니다. 슈퍼볼 LV가 그렇게 끝난 지금, 더 위켄드가 하프타임 무대에서 말 그대로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빛으로 된 미로에서 허둥지둥하는 짤이 밈이 되고 있네요. 눈 멀 정도의 빛처럼 뚱뚱하게 부푼 신스음들과 함께 코러스가 울려 퍼지고, 그 소리들과 수많은 빛 속에서 이전부터 쭉 그랬던 듯 자기 파괴적인 향락에 대해 노래해온 더 위켄드는 말했잖아, 나 빛에 눈이 멀어버렸어. 아니, 네가 만져주기 전까지는 잠들 수 없어.”하고 노래합니다. [매든]이 보이스에게, 혹은 보이스가 NFL에게, NFL이 그 누군가(들)에게 불러주는 구절 같군요.